2011년 개봉한 애니메이션 “소중한 날의 꿈” 은 제작된 이래, 매년마다 생일을 치루듯 개봉을 한다고 한다. 생일상 대신 스크린에서 자신을 뽐 낼 기회를 얻는다는 것. 이 애니메이션의 제작기간이 장장 11년이라고 하니, 그 정도 받을 가치는 있지. 그리고 이번은 네번째 생일을 맞이하여 서울영상자료원에서 상영했고, 홍대 근처에서 스터디 모임을 마치고 그냥 집에 가기 보다 어디라도 들러서 집에 가면, 교통비를 더 효율적으로 쓰는거야, 라고 생각하는 한 한량청년의 눈앞에 까지 왔다.
(*네번째 생일이니, 11년의 제작기간이니 하는 것은 영화 관람 후 GV때 들었던 것으로 관람전까지의 사전정보는 거의 전무하다 했다)
* 애니메이션다운 것?
애니메이션이나 만화에서 자주 보이는 게 하나 있는데, 남자주인공이 우주탐험과 비행기를 동경한다는 것. 사실 이것은 다양한 그림을 보여주기 위해서 그런 것 같다. 우주라는 상상력이 결합되면 우주의 모습을 보여주며 표현할 수 있는 게 많아지고, 비행기가 등장하면 땅 위의 공간이 하늘까지 확장되면서 입체감이 생기고, 파아란 하늘의 비행기 그 자체가 예쁘며, 내려다보는 풍경이라는 극부감을 시도할 수 있게 되니깐. 그리고 경비행기라는 것은, 얼마나 매혹적인가. 땅 위에 있을 때는 때가 낀 철판 덩어리에 불과한 것이 날을 수 있다니. 그것은 불가능한 꿈을 실현한다는 것, 그것 자체를 은유하는 것 같다.
암튼 여기서도 우주를 동경하는 남자주인공이 엔지니어 쪽 일을 하는데, 그것 자체가 상투적이라고 느끼진 않았다. 다만, 클라이막스 부분… 주인공이 마라톤을 할 때- 환상인지 실제인지 모르겠지만 경비행기가 주인공의 머리 위를 휭- 날아갈때 사실, 미야자키 하야오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서는, 하일라이트 분위기를 내기 위한 총동원의 성격으로 쓰인 것 같긴 한데, 비행기 없이 주인공에 더 집중해줬어도 좋았을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뭔가, 비행기가 날아다닐때, 헛?! 하고 조금 깨게 되는 게 있어서. 뭐 이건 작은 선택의 문제이고, 극의 완성도를 가늠하는 결정적 부분에까진 미치지 않는다고 본다. 다만, 조금 더 다른 방식으로 갔으면, 더 굵은 떨림을 선사할 수 있었을텐데 – 라고 아쉬워지는 거지.
* 내 꿈은 뭐지? 꿈을 가져야만 하나? 내가 이걸 꿈이라고 부를수 있는 걸까?
사회와 어른들은 언제나 꿈을 갖고, 야망을 갖고 도전하라! 라는 것을 거의 캐치프레이즈 처럼 내걸고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지만, 사실상 우리의 청소년기는 꿈이란 것을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는 여유일랑은 없다. 우선 뭐든지 가능성을 넓히려면 공부, 공부부터 잘 해야하는 것 너도 알고 있지? 사실은 공부를 잘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너가 점수는 60점을 맞아도 되는데, 등수는 1등을 해야한다는 것. 그것이 중요한 삶의 시대. 그래서 가능한한 바늘구멍이 아닌 조금 더 커다란 구멍에 도전하기 위해 그나마 공부에라도 도전하는게 마음 편한 것.. 체육이든, 미술이든, 글쓰기든 모조리 바늘구멍이니깐. 바늘구멍보다 조금 큰 공부라는 양말구멍에 하는게 안전하다는 게지. 사실 예체능계가 힘들기도 힘든 거지만, 뭐 돈도 더 들고…
우리가 갖고 있는 이 현길적인 고민을 주인공도 그대로 갖고 있다. 달리기를 좋아라 하지만, 특출난 실력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그녀는 패배하는 것보다 포기하는 것을 택했다. 지는 것을 유보했다고 볼 수도 있다. 여기서 극은 섣불리 그래도 너는 달리기를 해야지, 최선을 다하면 잘 될꺼야 라든가 달리기는 아니지만 소설을 좋아하는 제 새로운 재능을 찾았어요!! 하는 식으로 호들갑을 떨지 않았다. 꿈을 가져야만 하는 초조함과 위압감 그리고 특출나게 잘 하는 것 하나 별로 없는, 무엇에 열중할 수 없는 평범한 나에 대한 열등감 등을 현실적으로 잘 담아냈다. 현실에서 쉽게 볼수 있는 나와 우리들이기에 그런 찌질한 모습을 애니메이션으로 봐야 한다고?! 라고 할 수 있겠지만. 주인공의 모습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찌질하게 보이진 않는다. 그것은 주인공이 아마, 성장할꺼야. 그 결과가 어떤 것이 될 지는 모르겠지만. 자기 자신에게 솔직하고 담백하게 다가가려는 아이이니깐. 그래서 어떤 모습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성장한 주인공은 아마 고민의 나날들이 참, 내게 소중했던 시기였어 라고 회고하게 될꺼야. 라고 예상하게 된다. 우리 모두가 그렇듯이 말이다. 우리 모두는 사실 지금 현재, 어떤 결론에 이르진 못했지만, 지금 고민하고 있는 나와 학창시절에 고민했던 나는 다르다. 당시에 고민하고 있던 과거의 나가 있었기에, 지금 새로운 고민을 하는 현재의 나가 있고, 과거의 나를 추억할 수도 있다. 그리고 때론, 아- 그때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 라는 생각도 하게되지.
* 뭔가를 열심히 한다는 것은 아름답다
담백하고 좋은 말들과 여러 아름다운 장면이 있지만, 역시 내게 가장 감동적인 장면은 주인공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 주인공이 마라톤을 하는 장면이다. 예전에 주인공에게 패배를 안겼던 친구와 나란히 뛰고 있는 모습인데, 헥헥 대는 숨소리, 줄줄 흐르는 땀. 힘들겠다… 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뛴다. 뛰는구나… 역시나 무언가를 향해 나 자신을 내던져 열심히 하는 것은 아름답다… 라는 생각을 했다. 꼭 달리기를 계속 하지 않더라도, 어떤 성과를 이루기 위해 몇년을 노력하지 않더라도 – 지금 이 순간 열심히 뛰고, 다신 육상부에 나가지 않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순간 열심히 달리는 저 아이가 아름답다 라는 생각을 했다.
*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나는 망상하기 좋아하는 영화지망생. 언젠가 엄청 유명한 감독이 되어서 나도 관객과의 대화를 한다면 이런 말을 하게 되는 순간이 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여행중에 매우 멋진 노래와 춤을 볼때도- 멋진 영화를 볼때도- 내 지인이 성공했다는 좋은 소식을 들을때도- 그 기쁜 순간들마다 이런 생각을 했어요. 아, 내가 영화감독이 되어서 이 순간들을 맞이했더라면 느낌이 완전 달랐을 것 같은데- 하구요. 그런데 하다보니, 이렇게 영화감독이 됐네요. 그 좋았던 노래와 춤, 영화를 영화감독으로서 다시 한번 봐야겠어요. 하하하하아아아어어어어엉엉엉
* 이 포스팅은 서울영상미디어센터에서 진행된 프로덕션 디자인 수업의 학습자료를 단순 정리한 것임
1. 빛을 다룬 화가들
미켈란젤로 카라바조 “성 마테오의 소명” 1599-1600
카라바조는 빛의 체계의 초석을 만들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위 그림을 보면 특이한 점이 하나 있다. 보통은 빛이 창문에서 와야만 하는데, 창문은 일정의 질감만 제공할 뿐 빛은 오른쪽 위에서 쏟아지고 있다. 마치 인위적인 조명을 친 것처럼 딱 떨어지게 비추는 빛으로 하여금 빛이 닿는 곳의 질감과 닿지 않는 곳의 질감차이가 명확해진다.
렘브란트 “자화상” 1669
렘브란트는 빛의 화가라고 불리울 수 있을만큼, 빛을 잘 다루었고- 빛을 다루는 교과서라 할 수 있다.
렘브란트는 유독 초상화를 많이 그리고 자화상을 많이 그린 것으로 유명한데, 인물을 그릴 때 특징적으로 빛을 다뤄서- 조명쪽에서는 렘브란트 조명이라는 고유명사까지 쓰일 정도다.
위의 자화상을 보면, 빛이 정확히 옆도 아니고, 앞도 아니고 인물의 대각선 방향에서 오고 있다.
그렇기에 인물의 왼쪽 부분은 밝아서 하일라이트를 형성하고, 얼굴 오른편에 그림자가 지게 된다.
하지만, 빛이 정확이 옆에서 오는 것보다는 조금 대각선이기에 오른쪽 뺨 부분을 보면 삼각형 모양으로 살짝 밝은 것을 볼 수 있다.
이 삼각형을 렘브란트의 삼각형이라고 부르며, 삼각형 주위의 코에서 부터 턱으로 이어지는 암부를 형성하도록 빛을 조절하는 것을 렘브란트 조명이라고 한다.
렘브란트 “벨사살 왕의 연희” 1636-1638
렘브란트 “명상중인 철학자” 1632
왼쪽 벨사살 왕의 연희에서 빛에 의한 화려한 망토의 질감표현을 유심히 봐 둘 필요가 있으며
오른쪽 명상중인 철학자는 창문으로부터 비치는 빛과 빛이 미치지 못하는 암부에서 묘하게 풍기는 느낌을 봐둘 필요가 있다.
벨라크루즈 “시녀들” 1656
너무도 유명한 그림 벨라크루즈의 시녀들에서는, 오른쪽 창에서 오는 빛 그리고 앞의 캔버스 뒤의 열린 문까지 이어지면서 깊은 공간감을 형성하고 있다.
2. 질감이 두드러진 영화 – 향수
영화 “향수”는 향기에 대한 영화다. 하지만 향기를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까?
색상으로? 명암으로? 영화라는게 무엇 하나 떼서, 이런 느낌은 여기서 부터 비롯됩니다! 라고 얘기할 수 없게 모든 게 얽혀있긴 하지만
무엇 하나를 꼽는다고 한다면 질감을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위의 인서트 컷은 장 그루누이가 태어나자 마자 코를 벌렁거리면서 맡는 시장의 악취이다.
영화는 사실보다 더 사실처럼- 하이퍼 리얼리즘에 가까운 질감 몽타주로 냄새를 전달하고 있다.
내 개인적으로는 영화 “설국열차”의 전투씬에 앞서 피가 뚝뚝 흐르는 잉어를 도끼날로 베던 것도 생각이 난다. 그것으로 냄새를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폐쇄되고, 어두운 기차 안에서 펄펄 뛰는 잉어가 피를 흩뿌리는 게 강한 질감으로 각인되었던 것 같다.
3. 질감이 두드러진 영화 – 링컨
영화 링컨이 주요 레퍼런스로 삼은 화가가 페르메이르와 앤드류 와이어스 라고 한다.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1665-1665
앤드류 와이어스 “그녀의 방” 1963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가 몽환적인 느낌을 주는 이유는 자세히 보면 그녀의 속눈섭 등이 과감히 생략되어 있고 입술도 경계가 모호하게 처리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입술 오른쪽 끝 부분에 하얀색 점. 이 게 있음으로 해서 입술이 더 매력적으로 도드라진다.
앤드류 와이어스는 창문에서 나오는 빛과 그것으로 드러나는 부드러운 질감을 유심히 볼 필요가 있다.
영화 링컨.
창 밖의 빛을 질감있는 속커튼이 끊어주면서, 특유의 온화한 느낌의 빛을 잘 살려내고 있다.그리고 두번째 스틸 컷은, 링컨에서 잘 등장하지 않는 장면인데… 계속 속커튼 레이어를 통해 나오는 빛을 배경으로 삼던 주인공이 속커튼을 걷고 창가에서 직접 빛을 쬐고 있다. 왜냐하면, 이 부분이 영화에서 계속 서스펜스를 일으키던 법률 수정안 통과가 가결되는 벅찬 환희의 순간이기 때문.
주인공과 적대자 간의 회담 장면이다.
여기선 커튼이 아닌 블라인드가 빛의 레이어를 형성하여, 속커튼의 부드러운 느낌보다는 조금 더 센 느낌을 갖는다. 빛이 오는 방향에 스모그 같은 것을 주어서 입체감을 살렸고, 테이블의 질감이 도드라져 보인다. 그 테이블 양편에 앉아있는 상호간이 굉장히 멀어보이기도 한다. 이 시퀀스에서는 시종일관 인물이 측면광을 받아 얼굴 한편은 하일라이트를 받지만, 한편은 거의 대부분이 암부로 드러나있지 않다. 상호 좁혀지지 않는 의견의 충돌이 그러한 비쥬얼로두 부각되고 긴장효과를 배가시킨다.
거의 결말부 링컨이 죽을떄의 모습이다. 링컨 쪽만 빛을 받고 있고 암부로 둘러싸인 사람들의 모습이 매우 익숙하다. 고전회화에서 예수의 죽음 등을 묘사할 때 주로 쓰였던 방법.
여기서 링컨은 오른편에 있는 불씨로 승화되고, 이는 대중 앞에서 연설 장면으로 디졸브된다.
예수의 죽음이 일종의 인간을 위한 대속이었고, 그로 말미암아 인간이 계속 속죄를 거듭해야 하는 운명을 지녔던 것처럼 –
다들 그렇듯이 초등학교때- 가방이 가볍고 그러면 곧잘 뛰어다녔다. 마치 슈퍼마리오가 된 듯, 남의 집 수도관 뚜껑을 팡팡! 때리며 뛰어다니기도 하고 그랬는데 – 지금 그렇게 뛰라고 하면 뭐랄까 남들 시선보다 먼저 어디 다치기라도 할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으흑!
예전에 제주도에서 전경으로 있을 때, 가끔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려오곤 했다. 휴식 시간에 간다고 해도, 빠른 시간 안에 다녀와야 하기 때문에 빠른 걸음으로 종종 다녀왔었는데 – 어느날 버스에서 딱 내리니깐, 도서관 앞 신호등이 파란불이 딱 켜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질주해서 – 파란불을 건넌 적이 있다. 한 100미터 조금 안됐던 것 같은데… 그런데 – 그 다음날 보니, 온 몸이 쑤셔서- 왜 그러지?! 뭐 한게 없는데, 라고 생각하며 돌이켜봤는데 횡단보도 건넌다고 100미터 잠깐 뛴 것 때문에- 몸이 쑤셨던 것. 헉 내가 얼마나 운동부족인가… 그것도 남들은 다들 몸 건강해진다는 군생활 중에 이 모양 이꼴이라니. 하면서 나중엔- 휴식시간에 여기저기 조깅을 많이도 했다. 필받을때는 거의 40분 넘게 계속 뛰어서 해수욕장까지 다녀오고 그랬으니- 그 시절이 내 건강의 리즈시절이었을 수도 있겠다. 그때가 스물넷에서 스물다섯 시절.
그리고 시간은 흘러흘러, 지금은 서른둘.
밤에 산책을 하면서- 계속 걸어다니기만 하는 것도 도움이 되겠지만… 제법 오랜만에 뛰어버리면 어떨까- 라는 생각을 했지만.
에이 가만히 걸어다녀도, 여기저기 걸려 헛발질 하는데 – 뛴다고 뛰었다가 – 팍! 꼬꾸라지면 어쩐담… 하면서 말았다…. (신고 있던 것도 쪼리였고- 그래서…)
실업급여 수급인정을 위한 방문일이어서 오랜만에 일찍 일어나서 공덕으로 향했다가, 저녁약속까지 시간이 넉넉하게 남았는데 – 오랜만에(?) 외출도 했겠다, 시나리오 쓰는 과제도 마감이 다가오는 지라, 집에 안들어가고 어디 까페같은 데서 과제나 해야겠다 싶었다. 공덕이면- DMC랑도 그리 멀지 않으니깐, 얘기만 많이 듣고 아직 한번도 못 가본 한국영상자료원에 가야지 싶었다. DMC에서 점심을 간단히 먹고, DMC를 조금 돌아다녀보는데- 뭔가 서울 아닌 듯한 느낌이 들었다. 서울 하면 좁은 도로에 복작복작하고, 대로를 조금만 돌면 비좁은 거리에 뭔가 다닥다닥 주택과 차들과 언덕들이 늘어서는 게 일상인데 (사실 서울 전체라기 보다는 강북쪽이라고 하는 게 더 맞을듯)- 여긴 경기도 신도시처럼 길도 널찍널찍하고, 차 없는 거리인건지, 차도 안다니고 건물이고 뭐고 모두 다 신축으로만 늘어섰다. 주변을 다니는 분들도 나이드신 분은 정말 드물고, 거의 3-40대에 집중되어 있는.
이 인공적인 첨단의 마을은 그래서 사람들이 두루두루 거리에 나와 얘기하고 있어도 거리가 시끄럽지 않고, 뭔가 텅~ 하니 조용하다. 마치 사람보다 마을 전체가 어떤 기운을 내뿜는 것 처럼. 그런데 그게 괴기스럽거나, 싫은 느낌으로 다가오진 않는다. (훗? 난 차가운 도시남자?!)
조금 결과론적 의미부여로, DMC 라는 곳이 단순히 기업체의 묶음이 아닌 미디어를 다루는 사람들의 일터여서 그렇지 않겠느냐는, 그리고 내가 꽤나 동경하는 그런 곳이어서 그렇게 느꼈나 싶다.
암튼, 지나다니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 영상자료원에서 시나리오을 쓰고, 웨스 앤더슨의 영화를 한편보고, 저녁에는 쿠아레라는 까페에서 다큐멘터리도 한편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