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09.10]
아무리 생각해도 그리 좋은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단속이라고 해서, 걸리는 것은 적어도 조금 순진한 사람들이다.
신호봉을 아무리 째깍째깍 흔들어도 뭐 서야 말이지
담력 좋은 치들은 그냥 씩 웃으면서, 아니면 아예 외면하고 가버리고, 그들은 이 세상 법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를 아는 이들이다
돈 많은 이들은 썬탠을 쳐발라가지고선 안전띠가 있는지, 운전자가 있기는 한지 뵈지도 않고
바쁘디 바빠서 급히 차에 올라타가지곤, 어설프게 흔드는 신호봉에 맞춰 선, 적어도 조금 순진한 사람들에게만 용케도 삼만원씩 뜯어내는 것이다
그나저나 꼭 내 앞에는
꼭 티코나 레조같은 것만 잘 걸릴까
그렌져나 오피러스는 얄밉게도 잘도간다.
[2006. 09 .11]
가끔씩 무언가를 하다가 거울을 마주치게 되면, 생각한다 말도안돼. 경찰이라니. 책을 읽다가도, 팔뚝 부근에 경찰이라는 자수가 눈에 스칠 때, 양말에 까지 새겨진 글씨를 볼 때. 말도안돼. 경찰이라니. 참 부조화하기도 하지. 라고 생각하곤 한다.
내가 무슨 책을 읽고, 내가 무슨 음악을 듣고, 내가 무슨 생각을 하든, 나는 사람들에게, 경찰인것처럼 보여지겠구나
나이드신 분들은 순경아저씨라고 하기도 하고, 나이 젊으신 분들은 의경이라고 하고, 어찌 .되었든, 사람들은 내가 팔려 팔려 여기까지 온 것을 좀처럼 인정하려 하질 않는다
내가 경찰이라는 것에 가지고 있는 생각은, 매우 이중적이었는데 이젠 삼중적이다. 어렷을 적, 가져왔던 뭐라할까 선망보다는…. 두려움이 섞인 존경의 마음? 의지에서 나오는 게 아닌 왠지 주렁주렁 허리춤에 달고 있는 것들이 눈여겨 보여져 나오던 그 마음
그리고 스무살 이후에 가지던, 그 적대감.
그리고 지금 봐서 느끼는 이건… 그냥 어떤 외피도 없이, 공무원 직업의 일부일 뿐이잖아 라는 생각. 보통 영화에서 나오던 정의감 끓어넘치는 분은 한번을 못봤다. 그저, 실적을 올리고 승진시험공부를 열심히 하시는 아저씨들일 뿐. 시도때도 없이 제 관활이 아니라고 말하고, 어김없이 근무교대시간이 되면 퇴근을 하는 사람들일 뿐이다. 연일 취객들 상대하기 피곤해 죽겠다면서. 결코 경찰 같은 것은 하지 말라고 하는 사람들. 사실 거의 한평생 그렇게 산다는 것은 정말 징그러운 일일만큼, 경찰들 근무시간은 좀 고지식하게 편성된다. 세상의 일상적인 사람들(?)보다 경찰직원들이 조금 더 강한 성질의 것이 있다면, 권위의식이 좀 더 두드러진다는 것 정도..
어찌되었든 결론은
어렷을 적 경찰에 품었던 생각
스무살 이후 경찰에 품었던 생각
여기 본 경찰 아저씨들에게 품게된 생각
그 어떤 생각과도 난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난 경찰마크를 달고 있다
말도안돼. 경찰이라니.
[2006. 10. 02]
봄날을 읽기가 어렵다. 소설이기에 문장은 쉽게 보이지만 머릿속에서 내 감정까지 그것들이 들어올라치면 과거의 생각들, 지금에 대한 생각들 그리고 앞으로 해야할 생각들이 머리속을 가득 매워버리는 것이다. 내게, 치열했던 과거라는 것도 없으면서, 몇가지 장면들이 떠오르는 데 그 당시의 사람들은 어떠할까. 그 사람들이 느끼는 이것들이 몇천배 몇만배는 응어리진다는 것이, 그것이 ”상처”라는 것일까.
현재. 소설의 곳곳에서 폭력을 휘둘러대는 전투경찰, 군인. 이 단어. 전투경찰이라는 단어가 딱 하고 등장해버리면 내가 지금 여기서 무얼 하고 있는 것일까 싶다. 나도 결국, 사람들이 바라보는 전투경찰중의 한 사람일 뿐이고, 또 나는 그렇게 행동했을지도 모른다. 한없이 수그려야 할까. 지금 나는? 언제라도 거울을 보면, 어디든 내가 전투경찰의 한 명으로 존재한다는 흔적을 발견할 수 있는 지금.
내가 이곳에서 아주 무심코 바라보고, 행동하는 것들은 사람들에게 아주 다르게 읽힐지도 모르는 것이다. 녹슨 쇠뭉치에 불과하여 도로변에 세워져 있는 4개의 바리게이트는 언젠가는 사람들의 행로를 막을수도 있고, 창고에 쳐박혀 있는 경찰봉도 폭력을 위한 도구로서 언젠가를 위해 대기하고 있을 것이고, 함께 제복을 입은 나와 대원들의 모습은 누군가의 걸음걸이를 부자연스럽게 만들고 있을 수도 있다…나는 그것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할 수 있는 한의 최선이란 무엇일까.
[2006.10.05]
논산훈련소에서 상병 초입에 든 내 분대장 오상병을 보고 상병이면 저렇게 보이는가 보다 했다. 그는 마치 군인이 되기 위해 태어난 사람같았고, 완벽한 군인같았고, 앞으로도 쭈욱 군인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행동 하나하나가 딱 딱 떨어지는 폼에, 말투에, 모범적인 행동에 나는 솔직히 ‘대단히 위엄있어 보인다고’ 생각했다. 논산훈련소는 진급을 빨리 하기에 그는 아마 입대한 지 약 10개월이나 되었을 것이다. 10개월이면 사람이 저렇게 변하는 것인가 했다. 나는 다음달이면 상경이다. 1년이 되간다.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유일한 진리는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라던데, 내가 알아채지 못하는 순간에 나의 어떤 것들이 변해 있었고, 또 지금도 변하고 있을까. 솔직히 잘한 거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결국은 가증스럽게 똑같다고, 번번히 이유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있겠지만, 그건 나만의 사정이 아니겠는가. 나도 특별할 것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드는것이 회피할 수 없는 감정 같은 것 때문이다.
때때로 드는 불쾌감. 그리고 딜레마라고 생각하여 주저한 것. 내가 할 수 있고, 어떤 이는 할 수 없는 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 예전에 나는 어떠했다고 여기는 것. 대화라 할 수 없이 일방적인 말뿐인데도 불구하고 대화라고 생각했던 것. 그런 것들이 나도 어짜피 그렇고 그런 사람들 중에 하나라고 이야기 하고 있다.
이 곳에서 행동해야 되는 것은 어떠한 것들이라도 무난하게 만족하게 될 수 없는 것일까 ? 사람사는 공간속에 그런 공간이 있다는 것은 참 슬픈 일인것 같다.
[추석 새벽 02-04]
언제나 한가위만 같아라 라는 말을 떠올리면서, 하늘에 구멍처럼 뚫린 달을 보고 있으려니깐 참 감상적으로 되어 버렸다. 계속 보고 있으려니 눈이 부시다라고 느낄만한 달은 동전만큼 동그랬다. 달떴네 라고 혼잣말을 하다가 누군가를 칠듯이 돌진하는 바로 옆에 보내고는 자연스럽게 욕지기가 나와버렸다.
네멋대로 해라를 보다가, 달을 보다가 이소라의 sharry와 바람이 분다를 듣다가, 김광석의 노래를 듣다가 듣다가, 어느 단편소설속의 눈 쌓인 산 속에서 하늘을 향해 총질을 했다는 군인의 이야기를 떠올리다가, 결국은 점퍼에 쓰여진 경찰 POLICE라는 문양을 보고, 무전기 소리를 듣고,허리를 압박하는 장비를 느꼈다.
순간 닥치는 느낌은 슬프다 혹은 그립다가 아닌 것이었는데, 가슴이 아련하게 쓰라린 느낌이라는 것은, 그리운 사람들이 모습이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으로 알 수 있었다. 그 느낌은 내 과거에 머물러서 상기되는 것도 있었지만, 내게 닥칠 일련의 훗 날 같은것을 예상해보려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 같았다. 손에 쥐어 잡힐 것 같은 과거의 생생함이 다시는 내게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예감 같은 것. 그 느낌은 년이 바뀌고, 나이를 한 살 먹을 때 느껴지는 것과 비슷한 느낌. 어른이 되어버리는 슬픔 같은 것.
차는 바쁘게 휭휭 지나가는데 그 중 어떤이는 가족들과 즐거울 것이고, 그 중 어떤이는 추석 새벽에도 멈추지 않는 택시기사일 것이다. 택시기사는 내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은데 그들도 그냥 지나쳐버리는 것이다. 너무도 흔한 감상이기에 그런 것쯤이 인생살이지 하고 넘겨버릴 것을. 나는 아직 익숙치 못한 것이다. 어른들의 세상살이가 모조리 다 그런 것일 수도. 잔치란 것은 시작된 지도 모르고 끝나버리고, 일상의 굴레 같은 것에 매여서, 거기서 종종 느껴지는 감상들을 삭히고 삭히는 과정이 사람이 지혜로와 지는 것일수도. 그럴수도. 나도 언젠가는 익숙해질 그런 것일수도.
[2006. 10.07]
수직적 인간관계라는 것이 얼마나 섬뜩하게도 무서운 체계인가. 절대로 대항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것. 어떤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고 하여도, 명령이라는 단어는 그것을 묵살하고, 전체라는 이익을 대변한답시고 사람의 권리를 지배하고, 인간성을 지배한다.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내게도 권리라는 것 있다. 그 권리는 한 사람을 내 기분대로 칭찬하거나 다그치게 할 수 있고, 그 사람이 내게 미안하거나 비굴한 표정을 짓게 할 수 있는 것이고, 그 사람이 기쁜 표정을 짓게도 할 수 있다. 그 사람에게 명령하면서 그 사람과 대화하고 있다고 착각할 수 있는 권리이기도 하고, 그 사람의 눈치를 전혀 보지 않아도 되는 권리이기도 하고, 그 사람의 수면시간, 노동시간, 여가시간을 모두 통제할 수 있는 권리이기도 하다. 마음만 먹으면 한 인간을 그렇게 조종할 수 있는 것이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발휘할 수 있는 유일한 권리란, 자신의 진짜 속마음을 윗사람에게 감출 수 있다는 것 그것 하나 뿐인 듯이다. 아랫사람이 그 윗사람을좋아했던지, 싫어했던지,존경했던지,비웃었던지 윗사람은 좀처럼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들 사이엔 진정한 대화라는 것이 없으니깐.
다시 읽고보니 매우 절망적으로만 들리는 일기들이다.
하지만, 나는 따지고 보면 행운아이지
다른 곳에 비교해보면 이 곳은 참 널럴한 공간이다. 365일 24시간 근무체계이지만, 말똥 말똥 6시간 정도만 도로위에서 서있으면 되고, 그 외의 것들은 자기 맘이니. 제주경찰서 소속 초소라는 곳 중에서 여기가 제일 엉망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건 제주경찰서 소속 대원들 누구라도 다 아는 사실이다.
나는 제멋대로 돌아다닌다.경찰서에 있었다면, 코 앞에 있는 편의점도 엄두를 못내겠지만 여기선 버스타고 15분 정도 가는 도서관에서 가서 책을 빌려보기도 하고, 완전 제주시내중심에 있는 은행도 갔다 오기도 하고, 우체국도 가보고, 서점도 가보고 한다. 상부에 들키면 좀 문제가 될 것이지만. 내 위의 것 누구는 채팅으로 작업(?)을 걸어서 해수욕장에서 만남을 주선하기 까지 했으니, 착실하게 버스타고 주기적으로 도서관에 가는 나 정도는 용인해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열심히도 다니고 있다. 내 후임녀석은 곧 운전면허학원을 다닐 기세까지 보이고 있으니 여긴 참 열린공간이다. 민간인을 구경조차 하기 힘들다는 산골부대에게는 참 미안한 말이지만, 여기는 술취한 민간인분들께서 버럭버럭 찾아오시는 것이 너무 성가실 정도로, 그렇게 고립된 공간은 아니다.
여기 사람들은 모조리 다 운동부족이다. 훈련이나 운동장(그런것도 없으니) 뛰기, 체조같은 것 조차 없으니 그렇다. 도로변에 바짝 붙어 있는지라 단체행동을 시도할려고 해도 공간이 없다. 내 위에 누군가는 감자를 구워먹겠다고 손뼘만한 깊이로 삽질을 하다가 이틀동안이나 근육이 쑤시다고 엄살을 피웠고, 나도 너무 너무 좀이 쑤셔서 도로변을 좀 뛰었다가 바로 ‘알박혔다’ 군대가서 살빠졌다거나, 근육맨이 되었다거나 하는 것을 여기서는 자연스럽게도 기대할 수 없다. 몸 움직이는 것을 귀찮아 하는 내겐 잘된 일일수도 있는데, 밖에서보다 더 운동부족이라(그 땐 지각할라치면 좀 뛰기도 하고 그랬건만) 배가 불쑥 불쑥 튀어나오고 있는게 걱정이다.
초소장들은 자기 시간 때우기에만 관심이 있는지라 우리들끼리만 된다면… 다 된다. 핸드폰이든 엠피쓰리든 카메라든… 돈만 있다면 노트북을 들고 와서 써도 무방할 것이다. 오히려 그러면 고참들은 좋아할 것이다(이유는 뻔하지만) 그래서, 나도 MP3와 모디아를 마음 놓고 쓰고 있다. MP3로 요즘 영화와 드라마보는 재미에 빠졌다. 도로위에서 서성이면서 요즘은 네멋대로 해라를 보고 있다….
이런 환경이라면 군대 온 사람치고는 참 여유로운 생활이지 않나 한다.
단지, 좀 외롭고, 그립고, 막막한 내 감정같은 것이 요즘 거슬리는데, 그것도 배가 불러서 그럴 것이다…ㅎㅎ
후임이 한 명더 온 지금, 어떻게든 내게 이 조직의 성질들이 배어들어가지 않도록 몸부림을 치고 있는 듯 하다. 그런데 딜레마 같은 것이 있다. 이래도 아닌 것 같고, 저래도 아닌 것 같고. 또 내가 엄청 손해보는 느낌인 것도 같고, 나도 참고 있는 것들이 많은데 남까지 신경써야 하는가 싶고…사실은 아무것도 모르겠고, 다 알면서 그러는 것 같기도 하고… 아직 절반이 채 안되었건만 벌써 나태해져가고…그렇다 요즘.
하지만…
날 절대 화낼줄을 모르는 사람으로 알고 있는 내 후임과 함께 어떻게든 살아보겠다! 이 곳에서…
그래도 나는 행운아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