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DJ

  • 영화 두편

    그는 극장에 들어설 때부터 이거 심상치 않은데, 라고 생각했다. 이번에도 불길했다. 그래도 사람들이 꽤나 취소 티켓을 구히가 위해 애쓰던 영화인데 허무하게 자면 안돼지. 그는 폰으로 잠 깨는 지압법 따위를 검색했다. 관자놀이 압박, 손가락 사이 압박, 귓볼 당기기가 나왔다. 영화는 첫 컷부터 멋있었다. 와 기차와 정면으로 서있었도 꿀리지 않는 주인공의 표정. 그리고 음악까지. 명작임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두번째 씬부터 몽롱해지기 시작했고, 지압법을 동원하고, 물을 마시고 했지만 견딜 수가 없었다. 어떻게든 자, 이제 상쾌하지? 이제 잠이 깼으니깐 이제부터 제대로 보는거야? 앞에 못봤던 부분들은 집에서 보충하면 돼. 라고 생각했던 순간이 약 4번 정도. 그 4번도 이후에 다시 잠들었기에 도르마무처럼 계속 반복했던 것이다. 정말 신기한 것이 컷이 바뀔때마다 해당 컷들은 필사적으로 보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이다. 그가 집에가서 약간 소름돋았던 것이 그것이었는데, 그가 보지 않은 미지의 컷은 없었다는 것이다. 어떻게든 컷의 바뀜을 인지해놓고, 몽롱해졌으며 눈을 껌벅껌벅 댔던게 분명하다. 그래도 그는 엔딩 적 약 5분 정도는 제대로 보았다는 데 위안하기로 했다. 극장낮잠이 습관들은 것일까, 세로자막에 약한 것일까, 아예 극장에서 영화를 볼 수 없는 인간이 되어버린 걸까… 하지만 씁쓸해할 여유는 없었다. 바로 홍대로 넘어가서 또 예매해둔 6시 영화를 보아야만 했기 때문이다. 20분만에 광화문에서 홍대까지 대중교통으로 이동해서 영화를 본 다는 게 가능한걸까? 의구심이 들었지만 그는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6시 영화는 한국 다큐멘터리였고 개봉할 작품처럼 보이지가 않았고, 또 앞부분 조금을 놓치더라도 따라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결론적으로 아주 무사히 세이프했다. 심지어 그는 극장에 들어가기 전에 화장실도 들렀다. 다큐멘터리의 첫 시작이 멋없고 무심하게 시작되었던 것은 좋은 징조였다. 자신이 뭔가 더 중요한 것을 보여줄게, 라는 자신있는 태도처럼 보였다. 하지만 점점 의구심을 자아내는 것들이 있었다. 제일 의아했던 것은 사운드였다. 일터에서 노동하는 다양한 인물들에 관한 다큐이건만 현장음이 거의 죽어있고, 인물이 움직이는 사물 따위에 폴리 사운드를 끼워넣어져 있었다. 사운드로 공간을 확장하는 설정 자체가 없었다. 그리고 주제에 맞춤한 미디어 소스와 일관된 나래이션들. 나래이션은 인터뷰 했던 내용을 토대로 글을 정렬해서 등장인물이 읽은 듯 들렸다. 다큐의 구성과 달리 왜 사운드가 심하게 정렬되어 있는 거지? 이토록 납작하게. 그리고 멋없이 시작했던 화면은 점점 보기 재미있는 화면, 미적인 화면, 임팩트를 줄 수 있는 피사체의 유혹에 쉽게 넘어갔다. 이강현 감독이 계속 연상되었는데, 촬영에 있어서 상대방을 알고싶어 하는 호기심이 느껴지지 않았다. 극 중 등장인물들도 지나치게 단정되어 있었던 것이, 그들은 쉬는 날 집안에서조차 메이크업을 유지하고 있었다. 결국 말하고자 하는 바가 직접적으로 수면으로 떠오르기에 이르는데, AI 시대에 노동의 가치 라고 요약해야 하나? 그는 GV를 보지 않고 극장을 나섰다.

  • 갑자기 친밀함

    시계를 보니 11시 정도. 그는 이 정도는 선방했다고 생각했다. 오늘은 낮에 스타벅스 쿠폰을 써서 자리를 차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밖에 나서보니 공기의 결이 다르다. 진짜 여름이구나. 체감하게 되는 공기다. 하지만 그는 여름에 강했다. 이 정도 되면, 이제 밤에도 꽤나 자유롭게 유랑할 수 있는 날씨겠군. 이라며 기뻐했고, 하지만 이 여름은 또 금방 지나가버리지, 하며 미리 아쉬워했다.

    더운 날씨 덕분인지 스타벅스에 유난히 사람이 많았다. 첫번째 스타벅스는 들어갈때부터 혹시? 하는 마음가짐이었고 역시나. 두번째 스타벅스는 지하1층부터 4층까지 있으니까 뭐, 한 자리 쯤은… 하면서 들어선 곳이었다. 단 한자리도 없었다. 그는 스타벅스는 접기로 했다. 길 건너편에 팀홀튼 카페가 하나 생긴걸 기억했다. 거기 테이블이 노트북을 펼칠만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경험삼아 한번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팀 홀튼으로 향하는데 웬 스타벅스 간판이 하나 눈에 띠었다. 여기도 스타벅스가 또 있었나? 이제껏 이 길을 수십번은 지나갔던 것 같은데, 건물 안에 있어서 몰랐던 곳이었다. 혹시? 하는 마음을 다시 품고, 들어가보니 꽤 불편해보이는 높은 테이블 하나가 비어있었다. 이런 분위기라면 팀 홀튼은 오픈빨 버프까지 받아서 더더 자리가 없겠군. 일단 높은 테이블에 앉았지만, 역시나 불편했다. 생크림을 듬뿍 쌓아 둔 화이트 모카를 쪽쪽 빨고 나니, 문서 파일을 열어 볼 의지가 싹 사라지는 것 같았다. 여기서 낮-오후 시간을 다 버티고 저녁 6시까지 버티는 건 무리일 성 싶었다. 영화 예매 어플을 한번 켜봤다. 근처 아리랑 시네센터엔 관심있는 작품이 없었다. 영상자료원도 마찬가지. 서울아트시네마를 들여다보니 오후 4시 친밀함이 눈에 띠었다. 지금 시각이 오후 3시 10분… 충분히 갈 수 있는 타이밍이었다. 예매 버튼을 누르니, 빈 자리가 3-4자리 있었고 좌석도 나쁘지 않았다. 한번 매진이 되었다가 상영 전에 취소자리가 난 듯했다. 뜻밖의 영화긴 한데, 흔하게 볼 수 있는 기회가 아니라고 생각하니 더 특별하게 생각되었다. 그는 바로 짐을 꾸렸다.

    친밀함에 대한 정보는 거의 없었다. 하마구치 류스케 작품이라고는 들었는데, 그게 최근에 만든 작품인지, 초기작인지도 모르고 있었다. 극장에 입장하니 좌석을 꽉 매운 관객들이 보였다. 대체로 연령대도 2-30대 관객들이었다. 이렇게도 시네필들이 많은데, 왜 극장가 한국 독립영화는 관객이 이리도 적은걸까… 그는 씁쓸해하며 자리에 앉았다. 영화가 시작되고 나서야 영화의 제작연도를 대략 알게 되었고, 이 영화가 인터미션을 갖고 있는 꽤 긴 영화임을 알게 되었다. 세로 한글자막 이었다. 긴 영화가 되겠군, 이란 생각에 그는 느슨한 집중력을 가지고 영화를 쳐다봤다. 초반에 딴 생각을 많이 했다. 영자막의 위치와, 크기 그리고 이탤릭을 쓰지 않고, 느낌표를 주로 쓴느구나, 정도의 생각. 그리고 영자막이 2줄이 될 때는 가운데 정렬을 하지 않고 왼쪽 정렬을 하는구나. 이런 생각. 그러면서 느슨하게 따라가고 있는데 중간에 방심했는지 꽤 중요한 갈등의 국면으로 추정되는 인터뷰 장면에서 5분 정도 졸은 것 같다. 드디어 인터미션이 찾아왔다. 화장실에 가고, 물을 사고 하는 등의 행동 사이사이에 그는 급히 러닝타임을 확인했다. 4시간 15분… 끝나는 시각이 8시가 넘어서였다.

    인터미션이 끝나고 나서 등장인물이 연극안내라고 2시간 15분짜리 연극을 시작한다고 했을 때 그는 알아챘다. 아, 이 영화의 2부는 저 연극을 리얼타임으로 보여주려는 셈이었군. 정말이었다. 연극 촬영 영상을 영화로 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어떤 감흥을 취하는 것인가를 계속 고민하게 되었다. 촬영은 그가 그 연극을 실제로 감상한다고 하였을 때 눈이 갈 법한 곳을 적시에 향하고 있었다. 그런데 인물이 격정적으로 감정을 내뿜고 있을 때, 그는 알았다. 내가 저 연극을 보고 있었더라면 다른 인물들의 반응을 확인코자 했을텐데, 지금은 그 선택권이 박탈되었군. 연극이 진행되는 와중에 그는 1부에서 이 연극에 대해 언급했던 것들을 떠오르려고 했지만, 그닥 생각나는 것이 없었다. 어느 순간엔 1부가 있었다는 걸 순간적으로 잊기도 했다. 2부 연극에서의 인물들이 고유한 매력을 가지고 살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렇게 연기를 잘 하는 배우였나? 1부에서는 느끼지 못했었는데-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연극 자체의 줄거리는 잘 따라가지 못했다. 대사가 너무 많은데 세로자막은 그에게 정말 힘겨웠다. 결국 2부에서도 중간에 10분 가량은 잔 것 같다. 자괴감이 몰려온 사이, 연극이 끝났다. 영화는 끝나지 않았다. 이 에필로그가 중요하다. 여기서 감독은 뭔가를 남겼을 것이다, 라는 생각에 그는 다시 한번 집중력을 발휘해보았다. 지하철에서의 재회. 그리고 풋웃음을 내게 만드는 따스한 엔딩이었다. 이걸 위해서 에필로그를 했던 거였구나. 그는 제대로 집중하지 못했던 터라 이 영화에 관한 인상이 그렇게 좋게는 남지 않겠구나, 라고 미리 결론 내리고 있었건만 엔딩 덕분에 마음이 흔들리게 생겼다.

    그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처음으로 뚝감을 가봤다. 다른 테이블에선 구남자친구에 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유독 이 테이블의 목소리가 굵게 울려서 집중만 하면 내용을 따라갈 수 있었다. 구 남자친구는 원치 않는 일을 하고 있기에 평소에 에너지를 쉽게 잃고, 더군다나 원래 체력이 약하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친구를 한달에 한번 만난다는 것은 이기적인 것 아니냐고 얘기하고 있었다.

    그는 자전거를 타고 을지로4가의 카페에 갔다. 오, 맙소사. 여기 카페마저 자리가 없었다. 여긴 다른 대체제를 찾기 위해 다른 곳으로 가기도 힘겨운데 이를 어쩌나, 하며 그는 그저 맴맴돌고 있었다. 그때 한 외국인이 와서 그에게 자신이 이제 곧 자리를 뜰 것이니 자기 자리에 앉으라고 얘기해줬다. 그는 그 외국인을 안다. 이틀 전에 그 외국인이 노트북 충전기와 케이블을 빌려줄 수 있겠느냐고 해서 약 30분 동안 충전기와 케이블을 빌려준 적 있던 바로 그 외국인이었다. 그는 연신 땡큐땡큐를 소심하게 말했다. 그 외국인은 평소에 밤 늦은 시각까지 있던 이였는데, 자리를 못찾아 헤매는 그를 위해 자리를 양보한 것 같았다. 이런 경우도 있구나. 그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 홈페이지 SSL 오류 해결

    3일 휴일을 앞둔 목요일 그는 어제밤 잠을 설쳤다. 그저께는 감기기운이 있더니만 어제는 초저녁에 설잠을 자다가 전화가 와서 깼다. 프란체스코, 신의 어릿광대를 봤다. 영화는 신성하기보다는 우왁슬일 휴일을 앞둔 목요일 그는 어제밤 잠을 설쳤다. 그저께는 감기기운이 있더니만 어제는 초저녁에 설잠을 자다가 전화가 와서 깼다. 프란체스코, 신의 어릿광대를 봤다. 영화는 신성하기보다는 우악스러워서 좋다고 생각했다. 영화를 보던 중 잠깐 망상의 늪에 빠져 신의 매력은 그 응답을 들을 수 없다는 데 있는 것 같은데, 신의 응답을 들을 수 있게 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라고 생각했다. 영화를 보고 나서도 12시가 조금 넘어있을 뿐이었다. 누운 채 이북으로 소설 듄을 뒤적거리면서, 이것은 반지의 제왕(이 또한 읽진 않았지만) 부류보다는 드래곤 라자 부류이군. 라고 또 잡념했고, 이땐 적어도 새벽 4시를 넘어있었다.

    늦게 일어난 것은 아니었지만, 뭔가 도중에 몸이 깨버린 것 처럼 몸이 달궈져 있는 기색의 아침이었다. 하루종일 찌뿌등하겠군. 이라고 생각했고 정말 그랬다. 더딘 오후시간 중에는 미루고 미루던 홈페이지 업데이트를 단행했다. 이제껏 SSL 인증서 문제로 사이트 액세스에 위험한 연결입니다! 라고 뜨던 것이 맘에 걸려왔다. 문제는 너무 간단하게도 사용하던 호스팅 요금제를 바꾸면 해결될 수 있는 것이었다. 몇가지 제한사항이 생기긴 하지만 이제 더이상 홈페이지에서 고급 커뮤니티 기능을 쓰지 않기에 그리 상관없는 일이었다. 홈페이지를 바꾸는 작업을 좀 했다고 눈이 아프고 기가 다 빨린 느낌이었다. 오후4시 이후부터는 사실상 6시가 되기만을 기다린거나 마찬가지였다. 그야말로 시간을 때웠다.

  • 오늘은 대선일

    그는 어제 페니키아 스킴을 예매했다. 오늘의 계획을 세우길 이른 점심을 먹고 외출을 해서 스타벅스에 가서 쿠폰으로 음료를 주문할 것. 그리고 페니키아 스킴을 봤다가 24시간 카페에 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시작부터 틀어졌던 것이 일어나는 시각이 너무 늦어버렸다. 늦은 점심으로 시리얼로 먹고 나니, 글렀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튜브 따위로 시간을 때우다가 예매해둔 페니키아 스킴을 보러 갔다.

    그는 페니키아 스킴의 포스터에 등장한 베니시오 델 토로의 매력에 휘말려 있었다. 베니시오는 그 자체로 너무 웨스 앤더스적이지 않나? 어쩔 수가 없지. 보러 가야지, 뭐. 라고 기쁜 마음에 보러 간건데 생각보다는 좀 어려워 따라가기가 쉽지만은 않았다. 심지어 그는 중간에 약 3-4분 정도 졸기까지 했다. 줄거리 전개에 크게 관여하는 부분은 아니었지만. 웨스 앤더슨 영화를 보면서 줄거리에 따라가기 보다 이런 생각을 좀 했다. 웨스 앤더슨은 꼭 유럽인인척 하는 미국사람 같다. 그가 동경하는 어떤 양식의 매혹이 있는데 그가 이런 양식을 매우 키치하고 자유롭고. 꼭 속박당한 사람처럼 쓸 수 있는 것은 웨스 앤더슨이 유럽인’인척 하는‘ 미국인이기 때문에 가능한 거 아닐까. 이 포지션은 유럽인 그 자신이 취할 수도, 일본인이 취할 수도, 오로지 미국인이 취할 수 있는 포지션인것 처럼 보인다. 적어도 웨스 앤더슨의 영화를 보다 보면. 웨스 앤더슨도 그걸 알고 있는 것 같고 그렇기에 이 키치를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름값높은 초일류 배우들을 마음껏 활용하며서. 그는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조금 허무해졌다. 평을 보니 웨스 앤더슨의 전작의 양식과 흡사하다고 했건만, 그는 아직 페니키아 스킴의 본류에 해당하는 웨스 앤더슨의 영화를 본 게 없었다. 근작들만 손이 가는대로 찾아봤을 뿐이기에 그 맥락을 읽어낼 수 없었다.

    그는 쿠폰을 써서 버거킹을 먹고, 자전거를 타고 카페로 향했다. 처음에는 바람이 너무 세서 자전거가 잘 안나가는 줄 알았건만 그걸 넘어섰다. 형편없는 자전거였다. 그는 카페에 도착할 때쯤에는 헥헥 숨을 가쁘게 몰아 쉴 정도였다.

  • 내일은 대선일

    그는 오늘 운동을 하기로 정했다. 내일이 쉬는 날. 쉬는 날을 앞둔 날은 금요일밤 특유의 분위기 같은 것에 휩쓸리곤 했다. 쉬는날 별 다른 일정이라곤 없지만, 오늘 밤 뭔가 무리한 것을 해도 그것을 수용할 수 있는 날이 바로 앞에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낮 시간은 다소 산만했다. 역시 계획을 짜거나, 계획한 것을 수행하거나 그러지 않았다. 아, 맞다 이걸 해야지, 아, 맞다 해야되긴 하는데- 지금으로선 미루고 싶은 마음이 드니깐 미뤄야지. 이런 식의 반복행동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래도 조금 나았던 면은 끄트머리만 조금 남겨뒀던 책을 마저 다 읽어냈다는 것이었다. 그는 왓챠피디아에 올해 읽었던 책이 몇권까지 기록되었는지 확인하고는 조금 안심했다. 이제부터 한권의 책을 읽지 않아도 적어도 1달에 1권 이상의 책을 읽었다고 이야기 할 수 있게 됐다. 저녁 즈음이 되고서나서 색보정 된 영상을 받을 수 있었다. 사무용 모니터를 기준으로 보니, 색보정실에서 보던 것보다 좀 어두워보였다. 색보정 기사가 영상이 어두우면 사람들이 딴 생각을 하거나, 자기 시작하죠, 라고 이야기 했던 것이 떠올랐다. 극장의 노후된 빔프로젝터가 어두울까, 이 사무용 모니터가 어두울까. 그런 생각이 다소 스쳤지만, 일단락으로 치기로 했다. 이제 진짜 끝나가긴 하겠구나. 이제 더이상 이 영화로 해야 할 일이 없겠구나. 바랐던 바지만, 다소 붕 뜬 기분이 들기도 한다. 이 영화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막연하고 점점 자신이 없어져 몇차례 한숨을 내쉬었다.

    저녁시간이 되자 가기로 했던 바이지만, 또 한번 진짜 꼭 가야만 할까? 라는 악마의 속삭임이 맴돌았다. 하지만 달리 핑계댈 게 없었다. 집에 있는 사무용 의자가 뭔가 맞지 않는지, 허리에 통증을 유발하기 시작했다. 자전거를 탈 때도 느낄 수 있는 은근하게 지끈거리는 느낌. 분명 질환까지 다가가지 않았지만 안좋아졌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어떤 감각. 허리도 그렇지만 꺾을때마다 뚜둑 소리를 내는 목도 문제이고, 뭐가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저 뻐근함을 유발하는 어깨도 문제인데… 그런데 운동이라도 안할 수는 없었다. 그래 뭐라도 해야지, 뭐라도 그는 지하 1층으로 내려갔다. 평상시보다 조금 늦은 시각에 갔는데 사람들이 좀 있었다. 탈의실에는 나체로 주섬주섬 뭔가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남자들 특징인지 모르겠지만 왜 꼭 탈의실에서 나체로 뭔가를 계속 할까. 물기를 닦고나서 서둘리 옷을 주워입지 않고, 꼭 그 상태 그대로 드라이질이든 뭔가를 하려한단 말이지. 저 상태를 유지하게끔 하는 추동력은 무엇일까, 그는 잠시 생각하고, 서둘리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섰다.

    운동을 하면서 영어 관련 팟캐스트를 틀어두긴 했지만, 주의깊게 듣진 않았다. 뭔가 침묵 속에 있지 않았다, 라는 자기 위안의 백색소음에 불과했다. 다른 이들보다 짧은 운동시간을 마치고는 저녁을 먹고 자전거를 탔다. 역시 을지로4가. 을지로4가에 자전거 반납대에 다른 자전거는 없었다. 여긴 완전히 도심의 공간이구나. 그나마 이 부근 호텔에서 자는 외국인들이 자전거를 잘 빌리진 않으니깐. 어제인가. 바로 이곳에서 어떤 외국인이 그에게 길을 물어본 적이 있었다. 길은 매우 쉬웠는데 역시 그는 단어 위주의 짧은 영어를 뱉어냈다. 스트레이트. 유어 라이트. 호텔. 뭐 이런 식. 과연 그 외국인은 네이트브 영어권 사람으로, 아- 역시 한국인들은 영어를 잘 못하는구나. 라고 생각하고 몸을 돌렸을까. 아니면 그나마 관대한 유러피언이었을까.

  • 내가 종종 가는 24시간 카페의 다른 지점

    내가 종종 가는 24시간 카페의 다른 지점을 발견했다.

    원래 청량리쪽을 갔었는데 여기는 공간 구획이 나뉘어져 있어서 좀 더 조용하고 독서실 같은 분위기였는데 을지로에 어느새 새로 생겼네

    여긴 광장처럼 조금 너른 분위기여서 사람들이 좀좀따리 이야기도 하고 좀 덜 부담스럽달까. 나는 타이핑을 쳐야하기 때문에 적절하게 활기찬 분위기가 훨씬 편하지.

    사람들 대화를 한번씩 엿듣는 재미도 있는데

    내 앞에 있는 남자 2명은 어떤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 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이 저녁 10시가 되어가는데- 내일은 여기에 오전 10시부터인가 와서 밤 10시까지 하루종일 있자고 한다. 그 긴 시간동안 좀이 쑤시지 않게 열정을 다할 일이 있다니… 내 최대한계는 그래봤자 3시간 정도인데다가 그 중간중간에 딴짓도 엄청 많이 하는데..

    카페를 찾는 이유는 사람들 때문인것 같다

    나를 자극하는 사람들

  • 아까운 시간

    지금 쓰고 있는 시나리오 한글 파일을 열어보니 22일 전에 열었다고 되어 있다. 그 동안 아예 열어보지조차 않았었네. 내 하루의 시간 배분이 엉망진창이다. 충실히 살고 있지 못하다, 라는 느낌을 자주 받는다. 너무 산만하다. 같은 웹페이지를 너무 반복해서 들어가고 있다. 계획없이 시간을 살면, 성과가 더딜 것이다. 알면서도 그러냐? 휴- 내일모레 하루는 다른 양상을 보여보자?!

  • 밤을 예약했지만

    밤을 예매했지만 사실상 보지 못한 것고 같은 결과이다. 3.1절 시위날에 종로를 관통하는 272 버스를 타고, 중간에 내려서 지하철을 타고 허겁지겁 극장까지는 잘 갔지만 영화 시작 후 15분 정도나 봤으려나 쭉 잔 것은 아니었지만 계속 자다깨다를 반복했고 중간에 영화와 관련된 꿈까지 꾼 바람에 영화 내용을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게 됐다.

    내가 본 것이라곤 이탈리아의 풍경, 중간에 흑인 댄서가 춤을 추던 것. 뭔가의 풍경으로 끝나는 엔딩 이게 전부였다.

    지나가다거 어떤 관람객의 후기같았는데 연출과 촬영이 정확하게 결합되어 있다, 라는 말소리가 인상깊게 들렸다. 나도… 느껴보고 싶었지만 술 먹고 다음날은 무리였구나

  • 2025년 첫날

    딱 1년 전. 동대문 메가박스에서 영화를 보고 나와 청계천을 따라 따릉이를 타고 가는데 타닥타닥탁 저 먼 뒤편에서 불꽃놀이 폭죽이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시간을 확인해보니 1월 1일. 해가 바뀌어 있었다. 아, 새해에는 저렇게 폭죽을 터트리는 구나, 하고 알쏭달쏭한 마음가짐으로 남은 길을 자전거를 타고 갔다. 그때, 하던 일은 마무리가 되었고, 일단 2024년에 달리 계획이라곤 별로 없어 필리핀 어학연수라도 가야하나, 그런 고심을 하던 참이었다. 연말연시는 지난 1년 잘 살았나, 를 되돌이켜보기보단 앞으로 또 1년동안 무엇이 펼쳐질지, 걱정하는 타이밍이간 하다만- 지금은 좀 다른 것 같네. 2024년, 그래도 체력이 허덕일 정도로 바쁘게 지냈다고, 최선을 다했다고는 못하지만 언제나 자족하는 최선의 한계치가 너무 높아버리니 그럭저럭 다시 되돌아가도 비슷한 텐션으로는 살겠지. 싶을 정도까진 했으니, 그거면 됐다 싶다. 후회가 되는 선택들도 있었지만, 이미 지난 일이 되버린 걸 어쩔 순 없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또 해야 할 일이 있으니, 2025년을 뭉뜽그려 걱정할 여유가 아직은 없나보다. 그리 좋은 현재는 아니지만, 일단을 지금 고비를 힘껏 넘어봐야지 뭐.

  • 241106

    뭔가를 써야한다는 생각으로 들어왔는데 마음이 복잡하고 심란해서 뭐부터 써야될지 모르겠다-

    계속 뭔가를 하고 있어야 한다는 책무를 겹겹이 두른 시간들

    결국은 체력문제로 귀결되는 것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