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두번의 시험을 통해 얻은 교훈은 컨닝을 완전히 방지할 순 없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 처럼 상대평가와 순위매김 위주의 경쟁의 개념이 별로 없어서 그런지 다들 좋은 점수를 맞기 위해 엄청난 협동 플레이를 할 께 뻔하기 때문. 협동 플레이라 함은 토론을 하면서 시험을 치룬다거나 또는 핸드폰, 교재 등의 각종 기자재를 동원해서 어떻게든 답을 알아내려고 애쓴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안 답을 꼭 공유한다는 것, 등등.
지난번에 MS Word 실기를 본 적이 있고, MS PowerPoint 또한 발표형식의 실기를 봤기 때문에 이번에는 전부 필기시험을 봐야 했다. 무슨 문제를 낼까 했는데 학생들 중 영어를 잘 하지 못하는 학생들도 일부 있어서 긴 문장으로 기능에 대해 해설하는 문제는 낼 수 없고 메뉴에 어떤 것들이 주로 있는지, 그리고 단축키에 대한 문제를 주로 냈다. 조금 어렵다 한 문제는 CPU와 RAM 의 풀네임을 쓰라 하는 정도였다.
토론식 시험을 치게 할 수는 없다는 마음가짐으로 정말 심하게 구는 학생은 시험지를 그만 뺐어야 겠다 하고 마음 먹고 첫번째 시험시간에 임했다.
말하기 금지, 다른 학생것 보는 것 금지, 핸드폰 금지라면서 미리 선포해서 그런지 학생들이 생각보다 얌전했다. 하지만 이건 초반에만 그랬고, 점점 모르는 문제들에 대해 애가 타는지 조금씩 조금씩 대화하기를 시작. 대화를 완전히 금지 시킬 순 없는 것이 일부 영어를 모르는 학생 때문에 다른 몇몇 학생이 번역을 도와줘야 하기 때문. 그런데 아주 당연히도(?) 번역 이야기만 하다가 답을 슬쩍슬쩍 흘리고, 조금씩 보여주고 그런 일들이 증가하기 시작한 것. 딱히 누가 심하다기 보다는 다들 조금씩 조금씩 참조하는 양상이었다. 그래도, 그래도 저번보다는 얌전한 편이었다. 그래서 그냥, 그냥 시험을 끝낼 수 있었다.
문제는 두번째 시간. 두번째 시간 학생들은 항상 수업시간에도 유독 까부는 학생이 많고, 여학생들은 정말이지 앙탈(?)을 부릴 때가 때때로 있었다. 어떨 때는 활기차서 좋을 때도 있고 어떨때는 너무 말을 안 들어서 속상하게 만들기도 하는 그런 반. 특히 시험때면 이 반이 유독 더 골치아프게 했다. 이번에도 좀 걱정이었는데 역시 걱정대로였다.
시험 시작 전에는 학생들이 그래도 시험이라고 내가 나눠줬던 단축키 리스트를 다시 살펴보기도 하고, 메뉴에 어떤 기능들이 있는지 살펴보기도 한다. 그래도 학생들이 시험이라고 조금 준비하려고는 하는구나. 하면서 종이 치자, 시험을 시작했다.
이 반 역시 처음에는 얌전했다. 하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자 너도 나도 할 것없이 토론 열기가 뜨거워졌다. 정말 바쁘게 이리갔다 저리갔다 화면서 조용히 해라, 다른 애것 보지말아라 해도 테이블 배치가 ㄷ 자 형이라 그런지 관리감독이 쉽지가 않았다. 어떤 학생은 대담하게 모니터를 켜기도 하고, 핸드폰에 미리 찍어둔 컨닝 사진(?)을 살펴보고, 스마트폰으로 인터넷 검색을 하기도 한다. 또 자기만 그러는 게 아니고 꼭 알아낸 것은 다른 학생들에게 베푸는 아량까지 갖추었더라.
나도 원래 철저한 감독은 어려울꺼라 생각했지만, 이렇게 되면 점수의 형평성이 너무 맞지 않을 것 같아서 그래도 계속 잔소리를 끊이지 않고도 해댔다. 내게 있어 제일 어려웠던 점은 여학생들. 여학생들은 그야말로 생떼를 부린다. 이것 하나만 알려달라, 힌트라도 줘라, 시간을 조금만 더 줘라. 문제가 왜 이렇게 어렵냐 등등. 어찌어찌해서 혼란스러운 필기시험이 끝나긴 끝났는데 계속 떼를 쓰던 여학생이 남았다. 그리고는 계속 내게 자신이 틀린 문제가 하나 있는 것 같은데 그걸 고쳐야 한다며서 또 떼를 쓴다. 내가 안된다고 해도 다른 학생들에게 이 사실을 말하지 않겠다며 고쳐야 된다며, 제발 부탁한다, 5점을 받아야 한다고 떼를 쓴다. 그 학생은 평소에 시험 성적이 그리 나쁘지 않았던 학생이어서 네 성적이 그리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고 하니 만약 나쁘면 어떻게 할꺼냐 한다. 아… 정말 한 말을 또 하고, 또 해도 막무가내였지만, 아무리 컨닝을 어느 정도 허용할 수밖에 없다 해도 한번 받았던 시험지를 학생의 부탁 때문에 다시 주는 것은 아닌 듯했다. 그래서 약 10분 넘게 실랑이를 하다가 겨우 보냈다.
다들 보내고 채점을 하니 왠지 모르게 허무함이 밀려왔다. 시험을 못본다 하더라도 다들 점수를 낮게는 주지 않을 생각이었지만, 너무 컨닝을 많이 하는 바람에 시험점수에 큰 차별성이 없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앉는 구역에 따라 시험 점수가 구분됐다고나 할까. 틀린 것은 같이 틀리고, 맞은 것은 같이 맞았다. 가까이 앉은 학생들끼리는 유독 점수가 같았다. 그래도 자괴감 같은 것이 밀려오거나 그런 것은 아니다. 사실 내가 아는 것을 가르치고, 학생들이 나로부터 배우는 게 중요한 것이지 시험점수를 매기는 것은 어디까지나 학교 행정처리를 위한 과정이 아니던가 하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또 돌이켜보면 컨닝하는 학생들이 징글징글 하면서도 귀여워보이는 구석들이 있기도 하다. 모르는 문제가 있으면 아주 안달이 나가지고 이리 봤다가, 저리 봤다가, 이리 물어봤다가, 저리 대답했다가… 하는 모습들이 말이다. 내가 지적하면 미안하다고 하면서 좀 있다가 또 그러고, 내가 또 지적하면 또 정말 미안하다고 하는 구석들이 말이다. 덩치는 다들 산만해가지고는 어린아이같이 땡깡을 부리는 모습들을…. 정말 평화로운 마음가짐(?)이라면 정말 귀엽다며 웃으면서 넘길 수도 있을 것 같다. 오늘은 내 마음가짐이 그리 평화롭지 못해서 그런지 웃으면서 넘기지 못했지만 말이다.
학생들을 대하면서 느낀 것이 여기 문화인지는 몰라도 여기는 말로 하는 게 굉장히 많은 것 같다. 우리나라 같은 곳이 마트에서 정찰제에 물건을 사고 마는 것과 달리 여기 시장에서는 기나긴 힘 겨루기와 흥정을 필요로 하듯. 한 번 안된다고 하는 것, 규정이 있는 것도 사정하고, 토론하려고 하고, 고집을 부리려고도 한다. 이건 어떤 면에서 정 문화가 조금 남아 있는 것도 같다. 암튼 오늘 사무실에 갈 일이 있어서 갔었는데 오늘 시험인데 토론들을 하더라구요 하며 가볍게 말을 걸었는데, 여기가 뭐 그렇죠 하면서 단원들도 초반에는 시험지 쫙쫙 찢으면서 나가! 라고 하곤 그러는데 나중에는 그냥 뭐 다들 그냥 그런가보다 하게 되더라구요. ㅎㅎ 한다. 그래, 뭐 내가 여기서 내 권위 세우려고 온 것은 아니니깐. 시험성적 같은 처리를 그렇게 중히 생각하지는 말아야겠다 하며 자기위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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