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에 타는 순간, 이걸 어떡해야 하나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1평이 조금 넘는 비좁은 공간에 2층 침대가 두개 있었고 찜통이었다. 기차에 탑승한 시각은 8시. 그리고 우리의 도착 예정시간은 다음날 오전 10시 정도였다. 앞으로 약 14시간 정도 남아있었다. 에어콘은 누군가가 나온다고 한 것 같은데 전혀 틀고 있지 않은 것 같았다. 기차가 출발하면 조금 낫겠지 하는 생각으로 누워봤지만 그다지 나아지진 않았다. 12시 무렵까지 찜통이었다. 무엇보다도 다음 날 일정이 지장이 될까, 그게 신경도 쓰이고, 기차는 무슨 영문인지 자꾸 서기만 하고 마냥 잠 오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약 4시 쯤 잠든 것 같았다.
부하라에 내리는 순간 폭폭 찌는 더위가 기다리고 있겠지 하고 예상했지만, 생각만큼 덥지는 않았다. 모래바람이 꽤나 불어댄 것이 그나마 더위를 식혀주고 있는 듯했다. 간단히 점심을 먹으로 가는 길에 부하라의 유적지 사이사이를 돌아보게 되었는데, 느낌이 상당히 좋았다. 사마르칸트는 웅장하고 깨끗한 건물들이 위엄을 자랑하듯 서있다면, 부하라는 조금은 낡아서 세월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는 전통 양식의 건물들이 아기자기 하게 모여있었다. 또 사마르칸트와 다른 점은 사마르칸트는 도시 전체를 잘 꾸며놓은 공원처럼 깨끗하게 닦아놓고 사람들도 이 공원을 더럽히면 안된다는 듯 조심조심 하는 것만 같았는데 부하라는 원래 이런 양식대로 살아왔다는 듯 여유가 있었다. 내겐 개인적으로 부하라의 풍경이 훨씬 마음에 들었는데… 그건 건물양식 하나하나가 예뻐서 그렇다기 보다는 이런 풍경과 어울리는 사람들의 ‘생활’이 너무도 자연스러워 보였기 때문이다. 인위적이지 않은 자연스러움. 그 자연스러움들이 한데 뭉쳐서 부하라라는 하나의 마을 그리고 도시를 형성하고 있었다. 부하라를 걸으면서야 비로소 아, 이 곳이 외국이구나 라고 새삼 느끼기도 했다.
사실 수도 타쉬켄트는 별 다른 문화양식이 없는 단지 사람이 많고, 상점이 많은 도시라 달리 느낄만한게 많지 않았다. 안디잔은 그냥 작은 도시일 뿐이었고, 페르가나는 조금 고급스러운 작은 도시. 사마르칸트는 커다란 공원에 온 것 같다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부하라는 달랐다. 다른 풍경과 그 풍경에 한껏 어우러져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전통적인 양식에 사는 사람들이라서 그런지 조급함이 없고, 스치는 타지 출신 우리들을 힐끔힐끔 바라보면서 다들 나름의 자기 일들에 몰두하고 있었다. 이 곳에서 사는 사람들이 부럽다… 라는 생각을 하게 할 만큼.
부하라에 여유있게 머물면서 지내면 좋으련만 다들 함께 모이자고 일정을 잡은 것이기 때문에 시간이 넉넉치가 않았다. 약 이틀을 머무르고 사막으로 향했다. 나보이에서 더 위 쪽으로 올라가야 하는 사막으로.
우즈벡의 사막은 흔히 내셔널지오그래픽에서 나오는 사막처럼 고운 모래, 선인장 그리고 전갈 혹은 하이에나가 있는 그런 곳을 상상하면 안된다. 그냥 메마른 땅이며 그 곳에는 총총이 말라 비틀어진 나무들이 질긴 생명력으로 자리잡고 있다. 동물은 달리 본 게 별로 없었다. 사막은 야영장이 있는 곳까지 약 5시간을 차로 끊임없이 달려야만 한다. 도로는 그래도 반포장 도로 정도 되는 게 있어서 그 다지 어려운 점은 없었다. 그냥 에어콘이 나오는 차 안에서 풍경들을 감상하다가 지치면 잠에 들면 그만이다.
야영장은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식사도 생각보다는 잘 나왔고, 화장실도 있고, 전기도 나왔다. 샤워실도 있었는데 있는 지를 다들 모르고 있어서 사용하지는 못했다. 우리 일행은 야영장 근처에 있는 바다 같은 호수에 잠시 물놀이도 하고, 낙타를 타기도 했다. 낙타타기는 이동 할 거리가 있어서 타고 이동하는 건 아니고 그냥 약 20분 거리정도 되는 산책을 한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생리적인 현상인지 아닌 지는 잘 모르겠지만 낙타가 계속 울고 있어서 마음이 아프긴 했다. 묶여있는 낙타를 굳이 일으켜서 한 바퀴 돌고 사진을 찍으려고 하는 인간의 욕심이란… 이런 생각도 좀 들기도 하고, 코이카 와서 내가 참 호강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그래도 하고 싶은 마음, 뭐든 경험하고 싶은 욕심은 버리기가 참 힘든 듯. 밤에는 모닥풀을 피워주고 악사가 나와서 노래를 불러주기도 했다. 그래도 무엇보다도 그 야영장이 좋았던 것은 드넓은 사막에 둘러쌓여 있다는 것, 그 것 자체였다. 시끄러운 그 무엇도 없고, 눈을 어지럽히는 것도 없다. 단지 끝없이 메마른 땅과 하늘이 있을 뿐이었다. 마음이 차분해지는 느낌. 내가 책임져야 할 것, 내가 고민해야 할 것 등등의 것들 전부를 잠시는 유예해도 될 것 같은 느낌. 이랄까.
그렇게 부하라와 사막 그리고 사마르칸트를 거쳐서 수도 타쉬켄트로 돌아왔다.
무엇보다도 이번 여행이 즐거웠던 것은 좋은 사람들과 함께 있어서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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