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8.23.] 싸이월드 일기

헤모글로빈, 알코올, 머리칼 

                                          –김선우

(머리가 깨진 날 기뻤어요
내상보다 외상이 덜 위험하거든요)

보도블록을 깨다 손목 베이자 불타는 머리칼,
바리케이드 위에 살점을 널던 팔십년대
그 격렬한 외상의 날들
자고 일어나면 새살이 돋아 있곤 했지요
추억의 쓴물에 어금니를 담그거나
이적성 표현은 아닙니다

구십년대는 우울한 내상의 날들이어서
걸핏하면 넘어지고 발목을 삐는데
피 한방울 흐르지 않고 멍만 듭니다
세계 인구의 열배도 넘는 세포가 모여 이룬,
육체의 나날은 출혈 없이 평화롭습니다

그런데 어제 머리를 깼지요
만취해 돌아오다 길에 누워버렸습니다
두개골은 멀쩡하고 상처도 크지 않은데
폭포처럼, 피 흘리는 머리칼
친구의 웃옷은 벌겋게, 치마를 물들이고
길바닥에 누워 헤실헤실 웃더랍니다
“아아 상쾌해” 하면서 말예요

빨간 다알리아 꽃들이 (기억나요?)
뭉텅뭉텅 꿈 밖으로 걸어나갑니다
편지를 썼다가 구겨버렸어요
―내 몸은 나를 보호할 의지가 없나봐
방금 당신께 전보를 쳤습니다
―안 보이는 상처가 나를 시들게 해
나는 갑자기 무서워져
다알리아 꽃모갱이를 꺾으며 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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