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훈련] 인천공항에서 타슈켄트 공항으로

새벽같이 일어나서 씻기 시작했다. 친구녀석은 아직 잠결이다. 우즈벡에선 해산물 먹기가 힘들다고도 하고, 출국 전 먹는 마지막 식사가 될 것 같아서 호사롭게 비싼 초밥집까지 데려다줬건만 세상 모르고 쿨쿨이군. 간촐하게 씻고 단복을 챙겨 입으려니 친구 녀석이 눈을 비비며 일어나 대문까지 나와준다. 갈게, 잘가. 이 정도로 작별의 시간은 짧았다.
고려대 앞 거리가 아직 가로등 불빛으로 붉다. 드문드문 사람들이 입김을 호호 불며 잰걸음을 한다. 밝은 편의점 앞을 걸을 땐 사람들이 힐끗 나를 쳐다보기도 한다. 단복이 그리 평범하지만은 않은가 보네. 어찌보면 기차역에 계신 아저씨들 옷처럼 생기기도 했고, 어찌보면 교복처럼 생기기도 한 것 같네. 암튼 오랜만에 입어보는 유니폼 옷깃을 훌훌 털으며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생각보다 공항버스는 일찍 왔고, 사람들이 주섬주섬 타는 모양 따라 가 앉았다. 예정시각보다 30분은 일찍 공항에 도착할 것 같았다. 공항까지는 가는 동안 내내 창 밖 풍경만을 주시했다. 그냥 생각이 여러모로 겹쳐 들었는데, 그 중 가장 큰 것은 막연한 설레임인 것 같았다.
인천공항에 도착하니 이미 날이 밝아 있었다. 각자 캐리어에, 배낭에 맨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우선 어디로 가야하나 싶었다. 약속 포인트로 먼저 가야하나. 입출금 ATM에게 먼저 가야하나. 택배사에 먼저 가야하나. 에잇, 처음 외국 나가는 티 나게 엉거주춤 하지 말자구! 시간여유가 있었으니 택배사부터 갔다. 가는 길에 세네갈에 출국하려는 단원들을 우연히 만났다. 길게 인사하고 그럴 여유도, 시간도 많이 없어 간단히 잘 챙겨 나가시라고 하고 갔다. 조금 일찍 도착하긴 했지만 나도 은근히 신경쓸 게 많았는데 택배사에서 물품을 찾고, 핸드폰을 정지시키느라 통신사에 전화를 하고, 초과 수화물 비용을 계산하기 위해 ATM에서 출금을 하고 등등. 혼자 이것저것 하려니깐 일이 많은 것 같았다.

공항에서 단체사진

그 이후부터는 우즈벡 단원들이 함께 움직이는 것이어서 그냥 왁자지껄 분주했다. 가족들과 함께 나온 단원들 사진을 찍어주기도 하고, 짐 정리를 다시 해야 하는 단원을 좀 도와주기도 하고, 게이트를 나서기 전 우즈벡 단원 모두 모여 단체사진을 한 장 찍고 그렇게 출입국 게이트를 나섰다.
그리고 비행기. 우즈벡 항공사 비행기를 타서 한국인 승무원도 없었고, 한국말도 잘 통하지 않을 것 같았다. 국내훈련때 조금이나마 익혔던 러시아어는 출국 준비하는 한달 사이에 모두 초기화가 되버린 바람에 승무원과의 대화를 시도하진 못했다. 그래도 우즈벡은 약 7시간이면 도착하기 때문에 달리 승무원의 도움을 받을 일이 없어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전면 스크린에는 러시아어가 더빙된 영화를 상영하고 있었다. 현지 훈련부터는 우즈벡어를 공부할 예정이니 내가 저 영화를 이해할 날은 평생에 없겠군. 이런 시덥지 않은 생각을 하며 우린 날아가고 있었다. 어제 늦게자고, 오늘 일찍 일어나는 바람에 조금 잠에 들기도 했는데 일어나보니 이제 1시간 정도만 있으면 우즈벡에 도착할 것 같다고 한다. 점점 설레여졌다. 내가 설레임을 느꼈던 것은 뭐랄까. 낯선 환경 그 자체라 할까. 미국이나 유럽처럼 흔히 영화에서 봤던 장소도 아니고, 거의 가진 정보 없는 나라에 가게 된다는 것 그것 자체가 내게 흥미를 끌었던 것 같다. 볼 거리, 들을 거리, 먹을 거리 등 모든 것들이 내게 새로움을 다가올거라는 기대. 어저면 거기서 나 또한 한국과도 다른 모습으로 겪고, 느끼고 성장할 거라는 기대가 모락모락 피었던 것 같다. 어쩌면 이건 외국 처음 나가보는 촌놈의 막연한 로망스였다고나 할까.

기내에서
기내에서
착륙학즈음 우즈벡 풍경

비행기 창으로 드디어 우즈벡의 풍경들을 보인다. 평지에 드문드문 있는 잿빛 건물들. 그마저도 눈으로 뒤덮여 있어서 어떤 건물인지는 지레짐작 해야하는 그런 낮은 풍경들. 비행기가 드디어 활주로를 미끌어지기 시작했다. 저 멀리 네모난 개털모자 같은 것을 쓴 중년의 남성이 무심하게 걷고 있는 게 보였다. 생각보다 의외의 풍경이었다. 아무리 인터넷에서 검색해봐도 우즈벡이 추운 나라라는 말은 없었고, 50도에 육박하는 여름을 경험하게 될 더운나라라는 정보밖에는 없었는데… 여긴 마치 러시아처럼 생겼다는 게 내가 느낀 우즈벡의 첫 인상이랄까. 좀 쓸쓸해 보이는 풍경이다, 라면서 내가 지녔던 로망스의 일정 부분이 휘발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우리는 우즈벡 땅을 처음으로 밟았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백인이 활주로 한 가운데 서 있고, 양 갈래에 버스가 서 있었다. 영어로 우리에게 뭐라고 하는데 비행기 소리 때문에 시끄럽기도 하고, 영어 실력이 미천하기도 해서 그냥 고개만 끄덕였더니 사람이 적게 탄 버스를 가리키며 그 쪽으로 타라고 한다. 우리는 엉거주춤 그 쪽으로 타니 공항을 한 바퀴 뺑 돌아 출입국 관련 기관이 있는 건물로 간다. 공항이야 한국 공항과 뭐 별 다를 게 없었다. 단지 건물들이 좀 낮고, 잿빛이라는 것 정도. 공항의 입국 심사대에 줄을 섰다. 한국에서 읽었던 수기들에 의하면 입국 심사대에서 괜시리 시간을 끌어서 한 시간 이상은 소요될 것이라고 했는데 생각보다 수월하게 입국 심사를 마칠 수 있었다. 아마도 관용여권이어서 그랬던 것 같다. 입국심사를 통과하니 관리주임님과 선배단원들이 나와 계신다. 짐을 나르면서 간략하게 인사를 하고, 우리 동기는 타쉬켄트 공항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휘날리는 우즈벡의 눈발속에서 찍었던 그 사진. 각자 마음 속에 간직한 설레임 때문인지 다들 흐뭇한 표정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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