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학기] 첫 수업 (2011.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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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날 거의 밤을 샜다. 9시 수업이고 여러가지 셋팅문제 때문에 조금 일찍 간다 하면 8시에는 집에서 나와야 했다. 그런데 내가 잠을 자기 시작한 시각은 약 5시. 수업 준비를 한다고 그렇게 늦게 잔 것은 아니었다. 우선 근래에 밤낮이 바뀐 탓에 쉽게 새벽을 지낼 수 있었고, 첫 수업 관련 준비는 도대체 뭘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준비해야 할 지를 몰라 이것저것 헤맸다고나 할 까. 이것도 좀 적어보고, 인터넷도 좀 찾아보고, 프로그램 영문판도 좀 살펴보고 한다고 시간이 금방갔다. 사실 준비했던 시간보다 이거 내일 어떻게 될까 멍하니 걱정하는 시간이 더 길었던 것 같다.

어쨌든 백팩에 노트북, 케이블, 마우스, 책 등을 꽉꽉 채워놓고 학교에 갔다. 먼저 빔프로젝터를 설치하려는데 이상하게 1미터 짜리 D-SUB 라인은 이상이 없는데, 이번에 전자상가에서 새로 사가지고 온 5미터짜리 D-SUB 라인은 인식이 전혀 되질 않았다. 중간에 단선 됐나 싶어서 선을 이리저리 꼬아보아도 도무지 되질 않았다. 이런! 1미터짜리 D-SUB 라인은 도저히 책상이랑 빔프로젝터가 놓일 공간이랑 닿질 않는데. 뭐 어찌 방도가 없었다. 빔프로젝터를 노트북 쪽에 당겨 가져와서 비추니 거의 사각형이 아닌 마름모꼴로 우스꽝스럽기만 하다. 그래도 어느 정도 알아볼 수는 있으니, 없는 것 보다 낫지 하면서 IT 학부 카페드라 쪽으로 향했다. Dilfuja 와 10명의 학생들이 있었다. Dilfuja는 새 교실에 준비가 다 됐나고 묻는다. 마름모형 화면을 띄우는 빔프로젝터가 걸리긴 했지만, 모든 준비가 완료됐다고 대답했다. Dilfuja 그리고 학생들과 함께 해당 교실로 향했다.

Dilfuja 는 오늘은 MS Windows에 대해서 수업을 해야한다고 한다. MS Windows 는 저번 시간에 이미 했지 않는가. 또? Dilfuja는 MS Windows의 수업시수가 2빠라여서 그런다고 했다. MS Windows에 관한 수업 준비는 전혀 되지 않은 상태였다. 뭘 하지? 하다가 아! 저번에 수업계획서와 함께 준비해놨던 프레젠테이션 파일이 떠올랐다. 이 그룹 수업에는 참관만 하느라 해당 프레젠테이션을 하지 않은 것이다. 간단하게 MS Windows의 역사와 Hardware 요약정보를 영어로 했다. 학생들이 영어를 잘 하긴 하지만, 억양이 영국식에 가까운 우즈벡식이라서 거의 내가 말하는 영어 발음은 못알아 듣는 듯하다. 뭐 그래도 어쩔 수 없지, 하면서 혼자 지껄여댔다. 해당 프레젠테이션은 내 소개까지 포함해서 약 20분만에 끝났다. Dilfuja가 Windows에 관한 다른 것은 없었느냐고 묻는다. 사실 보여주면서 제어판 설정 같은 것을 할 수도 있겠지만, 내 노트북은 한글 Windows 7 인 바람에 학생들이 쓰는 영문 Windows XP와 너무 달라서 같이 따라하면서 할 수 있을만한 것도 별로 없었다. Dilfuja가 나서서 학생들에게 그림판을 열라고 했다. 그리고 우즈벡의 국기를 그리는 수업을 했다. 열심히 이제부터 나와 함께 한 학기 수업을 같이 하자고 해놓고 Dilfuja가 수업을 진행해버리니 내가 뭐가 되나 싶기도 하고, 암튼 엉거주춤한 약 1시간이 그렇게 흘렀다. 수업이 끝나고 Dilfuja에게 다음 시간부터는 MS Word로 진행해도 되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좋다고 했다.

그리고 3번째 빠라. 이 시간에는 같이 들어오는 현지 선생님이 없기 때문에 계획대로 MS Word를 진행할 계획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빔프로젝터를 제대로 보여줘야만 한다. 혹시나 해서 데스크탑과 빔프로젝터를 해당 5미터짜리 D-SUB라인으로 연결하니, 된다! D-SUB라인의 단선문제는 아닌 것으로 판명. 여러 연구의 결과. 결국은 성공했다. 원인은 1미터짜리 D-SUB라인은 노트북이 자동인식해서 해상도를 조정해주지만 5미터짜리는 무슨 이유인지 노트북이 자동인식을 못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수동으로 해상도와 다중 모니터로 디스플레이 설정을 바꿔야만 했던 것. 어쨌든 해결은 됐고 3빠라 수업 학생들이 오기만 기다리면 되는 것.

시간이 되자 학생들이 하나, 둘… 한 명만 조금 늦고 다 왔다. 수업은 우즈벡어로 진행하기로 했다. 오늘의 수업주제는 MS Word의 기본 사용법. 텍스트를 치고, 밑줄, 기울임, 크기, 행간, 다간, 주석 달기 등등의 서식들이다. 내가 먼저 시범을 보여주고, 따라하게끔 하고 못 따라한 학생이 있으면 알려주고 하는 식으로 진행했다. MS Word가 그리 고난이도 프로그램은 아니기 때문에 학생들도 웬만한 것은 다 잘 따라했다. 간혹 메뉴 위치 같은 것을 몰라 조금 뒤쳐지는 학생도 있긴 하였지만, 전체적인 프로세서 자체를 모른다거나 타자도 잘 못친다거나 하는 학생들은 없었다. 수업을 실제 진행 해보니 언어가 그리 많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빔프로젝터 등의 시각화 보조장비가 있기 때문에 예시를 보여주면 되고, 하세요, 됐나요? 정도의 말만 필요했다. 물론 추가적인 설명을 하자면 한도끝도 없이 할 수 있겠지만 우선 내 현지어 실력으론 어림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계획했던 데로 수업이 잘 진행이 됐고, 수업시간이 거의 지났다. 약 10분 정도가 남았던 터라 배웠던 것을 연습하라 했다. 그랬더니 학생들이 MS PowerPoint를 켜면서 PowerPoint는 언제부터 배우냐고 묻는다. PowerPoint는 커리큘럼상 3주 후부터 배울 예정이라고 하자, MS Word는 재미없다는 뉘앙스의 이야기를 한다. 뭐, 그 심정 십분 이해하나 PowerPoint를 당겨서 일찍부터 수업해버리면 커리큘럼이 너무 흐트러져 버린다. 이미 1빠라 수업반보다 진도도 빠르단 말이다!

수업 종이 치고, 학생들을 모두 보냈다. 휴, 그래도 첫 수업을 어떻게 끝내긴 끝냈구나.  잠이 부족했던터라 피곤이 급밀려왔다. 짐을 챙기고 교실을 나왔다. 나오는 걸음이 그래도 전과는 달랐다. 다를수밖에 이제는 나도 수업을 시작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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