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에 트레일러를 달고 가는 여자가 그의 앞에 있었다. 트레일러는 그리 크지 않았고 가방도 헐렁해 보이는 것이 가벼워 보여다. 그녀의 귀 쪽에는 두터운 헤드폰 덮개가 보였다. 그가 그녀를 유심하게 보게 되는 것은 그녀의 자전거 속도가 지나치게 느렸기 때문이었다. 언뜻 뒤편을 살폈을때 그의 뒤로도 무더기로 줄을 지어 선 자전거들이 있었다. 그에게 모든 책임이 있는 것만 같았다. 트레일러를 단 구조적 문제 때문에 자전거 속도가 느려진 것이 아니었다. 그 이유를 넘어선 다른 것이 그녀의 자전거를 더 느리게 하고 있었다. 아마도… 자신만의 속,도?
그는 신호가 있는 횡단보도를 계기로 해서 차라리 차도 쪽으로 달림으로써 그녀의 뒤꽁무니를 벗어날 수 있었다. 토요일 저녁, 웬일로 차가 별로 없었고 그는 마음껏 속도를 낼 수 있었다. 그의 뒤에 있던 그 무더기 자전거의 조바심으로부터도 벗어날 수 있었다. 꽤 달렸다고 생각했을 때, 그는 다시 자전거도로로 올라섰다.
청계천 자전거도로의 제일 큰 문제는 행인이었다. 청계천 바로 옆으로 걷는 길은 모두 인도였지만, 청계도로에서 그 인도로 가기 위해선 2층 정도 높이의 계단을 내려가야만 했다. 을지로나 청계로 따위를 잠깐 걷는 이들이, 청계천이나 좀 보면서 걸어볼까? 한다면 제법 탐나는 것이 자전거도 도로였다. 게다가 청계천 자전거도로는 인도가 아닌 차도랑 맞닿아 있어서 자전거 도로로 걷던 행인이 잠시 비켜줘야한다면 더 내키지 않는 차도로 내려서야만 했다. 자전거 전용도로라는 표지판이 있지만, 저 마음 모르는 건 아니지.. 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마주칠때마다 종을 쳐대도 비키지 않는 행인을 연거푸 만나게 되면 그는 조금씩 짜증이 나는 것이다. 을지로 주변에는 외국인 관광객이 꽤 되는데, 오히려 외국인 관광객들은 자전거 도로에 잘 올라서질 않건만, 한국인들이 더 자전거도로에 진을 치고 배리어를 형성하고 있으니 얄밉기 그지 없었다
먼 발치부터 약 6명 정도 되는 중년의 남성 무리들이 자전거도로에 진을 치고 걸어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는 멀찌감치서부터 종을 울려대기 시작했다. 하지만 취했던지, 그들끼리 흥이 난 건지 그들은 이리저리 움직이며 걸으면서도 조그만 틈도 내주지 않았다. 이제 바로 가까이까지 와서, 자전거가 그들의 뒤꽁무니를 따라 걷게 될 형국이었다. 그는 종을 쉴 새 없이 울려댔지만, 그들은 아랑곳 하지 않았다. 그때 “비키세요!” 라는 어떤 여성의 외침. 그 외침소리에 중년의 남성들은 엉거주춤 틈을 만들면서 흩어졌다. 그가 뒤를 돌아보니, 그녀였다. 트레일러를 몰고 ‘자신만의 속도’ 로 그의 앞에 있던 그녀가 어느새 여기까지 도달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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