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더-봉준호] 한국적인 정서

한국적인 정서는 어떤 것일까요?

보통 ‘한의 정서’ 라고들 하는데요.
‘한의 정서’ 라는 것이 일제시대에 일본인들이 부여한 것이란 걸 아시나요?
(국문과 전공수업에서 배웠지요)

우리 고전문학을 보면 알수가 있듯이
한국인에게 ‘한의 정서’가 그리 대세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오히려 ‘한의 정서’가 익숙한 것은 ‘애수’ 나 ‘비애’의 정서를 갖고 있는 일본일걸요.
화투장 비광만 봐도 얼마나 비애의 감정이 느껴집니까… ㅎㅎ 이건 농담입니다.

우리 고전문학에서 대세인 정서는
아무래도 해학의 정서 같아요.

먹고 살기 힘든 민생들은
내가 시름시름 앓는 구나 하지를 않고
왜 사냐건 그냥 웃지요 라든가 양반님들은 똥이나 밟고 발랑 넘어져버려라(이건 지어낸거지만) 했잖아요.

ㅎㅎ 허튼 소리가 역시나 많아집니다.

영화 <마더>를 드디어! 봤는데요.
봉준호 감독은 정말 한국적인 감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점이 박찬욱 감독과 대조되는 부분인 것도 같습니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가 세계에서 상을 두루 받는 이유는 한편 그의 영화가 세계 어디서든 먹힐 수 있는 문제들을 다루고 있어서 그런 것 같아요. 그의 영화는 전혀 한국적이지가 않습니다.

이런 이유로 봉준호가 더 뛰어나다거나, 박찬욱이 더 뛰어나다거나 뭐 그런 것은 아니죠.
정서의 원형이 어디에 있건 영화 잘 만들면 되는 건데요. 뭘. ㅋ
개인적으로 봉준호 감독을 더 좋아하긴 하지만요. 이건 그냥 제 취향의 문제입니다 ㅎ

다시 <마더>!
영화는 그다지 시덥지도 않은 아줌마의 ‘비극’입니다.
그녀의 비극은 궁상이 따로 없어요.

진범을 찾는답시고
아들 친구 그리고 피해자 고객인 고딩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고물상 찾는 게 다입니다.
저는 처음 비장미 넘치는 포스터를 보고
진범 쪽에 무슨 조직폭력배라도 개입해가지고
엄마 혼자서 조직폭력배랑 대결해서 싸우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시덥지 않은 것들과 시덥지 않은 상황만을 만들어내죠.
엄마는 혼자 빨빨거리면서 뛰어다니지만, 고등학생 하나 구출 못하고 소주병 깨트리고 숨는 그런 정도입니다.
그리고 그보다 더 궁상떠는 아들내미한테는 혼 한번 제대로 못내고, 침맞자 하는 그런 아줌마에요.

아줌마가 당하는 시련들도 그리 비장미가 없게 느껴지는 것은
그녀가 어떤 악의 축들과 대결하는 게 아니라
이런 저런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궁상스러운 상황과 대결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야말로 막걸리 타령만 하는 할머니는 압권이지요.

몰입도 떨어지게 뭐 이래 하신 분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그런데요, 그런데요…
이게 더 리얼하지 않나요?
그리고 굉장히 한국적이지 않았나요?
해학적이면서 풍자적이고 뭐 그렇지 않았나요?
뭐 아니라고 하면 할 수 없겠지만
전 이게 훨씬 더 리얼하고 우리 한국적인 삶을 잘 담아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아줌마의 이런 궁상이
스틸컷으로 볼 때는 그리 비장미가 없을 수 있었겠지만요.
절대 정곡을 놓치지를 않았어요.
그래서 이 영화는 저를 “콕!” 하고 찌른 엄청난 비극 이었습니다.
저를 콕 찌르는 이 영화는 제 순간적인 감흥을 넘어서, 제가 갖고 있는 한국인 어머니상에게까지 다다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래도 죽음보다 더 치명적인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라는 결론과 해학…
그야말로 일품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ㄲ ㅑ! 역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봉준호야!” 라는 환호와
비극이 주는 뭉클뭉클함을 간직한 채
영화의 엔딩크레딧을 볼 수 있었습니다.

또 하나 놀란 것은
봉준호의 이야기 하는 방식과 영화 만드는 기술이
나날히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박찬욱과는 매우 다른 방식으로
영상으로 말하기라는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히히

PS: 김혜자 선생님의 연기야 말로 비교 대상이 없는, 다른 차원의 경지였던 것 같아요. 원빈은 잘생긴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노력은 좋아보였는데,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윤제문씨도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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