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게 보내는 편지 The Kids Grow Up] 아빠의 성장기

일요일, 늦은 첫 식사를 하겠다고 계랸후라이와 스팸을 구어내고 여차여차 우당탕탕 TV 앞 거실 소파에 앉았는데 막상 검정 TV 에 무엇을 틀어낼 지 막막하다.

좀 전에는 가벼운 미드(프렌즈, 빅뱅이론) 같은 것을 하나 틀어두면 집중해서 보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대충 20분짜리 식사시간으로도 딱 맞았는데

보고 또 보고, 우려먹기를 너무 많이했다

가끔 – 재밌게 보았던 영화를 다시 틀어서 일부를 보기도 하는데 –

끝까지 보는 것도 아니고 – 일부만 보기가 그리 당기지도 않는다

외장하드를 뒤적거려보니

분량이 되긴 하지만 EIDF 다큐들이 있는 걸 보고

이것도 언젠가 조끔씩 보고 해치우려고(?) 했던 것이고

극영화처럼 그렇게 스토리 이해하려고 머리 싸매지 않아도 되니깐

대충 파일 이름 순으로 정렬된 것 중에서 하나를 틀었다

“딸에게 보내는 편지”

뭐지? 좀 신파성 냄새가 나는데?!

우선, 배고푼데 이것저것 가릴 여유란

없지.

우선 틀었다.

무슨 시한부 인생을 사는 부모의 유언 같은 것을 생각했었는데

(다큐 내에선 아무도 죽지 않는다 ㅎㅎ)

그것보단 훨씬 쿨하고, 심플하게도 –

그저 뉴욕에 있는 딸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LA 로 대학보내는 기로를 주요 시점으로 하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걸 찍은 딸의 아버지가 다큐멘터리 감독이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이 다큐멘터리의 현재시점은 고작 딸이 고등학교 졸업하고 LA 대학으로 가는 스무살 때쯤이지만

딸이 여섯살 정도부터 홈비디오로 시작해서 스무살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

아빠이자 다큐멘터리 감독이 쭉 – 거의 최소한 10년 넘게 촬영을 해온 것

그래서 딸의 어렸을 적 모습과 아빠와 한 약속들이

현재와 교차가 될 때마다

풋… 세월이란

이란 풋웃음이 아니 나올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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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무를 올라타고선 자랑하는 딸아이의 모습부터

위의 졸업파티 드레스에 몸을 우겨넣고 힘들어하는 딸의 모습으로 순식간에 점프하는 진광경들을 볼 수 있지.

이 다큐의 영문 제목은

“The Kids Grow Up”

인데..

내용이든, 주제든, 소재든… 영문 제목이랑 더 맞는 것 같다

다큐의 느낌을 살려 한역해보자면

“애들은 다 크게되는 법이지요”

정도가 될까

어른들이 이야기하듯 푸념을 더 담아서..

주안점이 우리 사랑스러운 딸의 성장모습을 봐주세요 라기 보다는

딸의 성장모습을 꾸준히 카메라로 지켜봐오면서

사랑스러워하면서도

딸의 독립을 섭섭해하고, 두려워하는

한 어른의 또다른 성장기(?) 랄까.

그리고- 다큐답게

다큐감독과 그의 가족들의 삶을 송두리채 여과없이(뭐 여과가 없을 순 없겠지만)

보고, 느끼고, 생각할 수 있게되서 좋았다

보면서 –

참 부럽다는 생각도 많이 했고

나도 나중에 저런 기회가 주어지면 저렇게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는데 라는 생각도 해보고

평소에

나도 일상생활 같은 걸 카메라를 들고 동영상을 돌려대는 취미가 있기 때문에

딸애가 찍지 좀 말라고 – 성질 낼 때는…

이입되서 – 엄청 안타까워하기도 하고!

“그게 다 너를 위해서 그런거야!” 라며 ㅋㅋㅋ

그리고 미국식 삶과 문화의 다른 단면들을 관찰하게 되어서 좋았다

예를 들어 – 딸애의 프랑스 남자친구 로맹이라는 놈이

일년에 5주 정도 집에 와서 지내는데 미성년자인데도 – 부모들은 딸애 방이 그냥 재우고

다큐감독이 밤에 이상한 소리가 나면 어쩌지? 걱정되지 않아? 라고 하면

다큐감독 와이프가 아래와 같이 대답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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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든지 밖에서 잘 수 있는 애들이라구

라고 태연하게 대답한다 ㅎㅎ

침대도 하나 같던데 ㅎㅎ

사실, 한국에서는 은근히 이성간 내외하게끔 하는 문화가 남아있는게

상당히 불편하다고 생각하는 나라서 그런지

저렇게 믿고 자유롭게 두는 것은 매우 부러웠다

그리고

다큐감독의 아버지도 종종 등장하시는데

웃는 상이 너무 귀여우신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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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나름 화끈한 면이 있었는데

바로 6개월 전인가

다큐감독의 친어머니가 돌아가시자, 그 해에 바로

지금 캡쳐에 나온 분과 재혼하신 것 ㅎㅎ

그리고 다큐감독에게는 딸애의 오빠가 하나 있는데

이 오빠는 입양한 양아들이다

그런데 조금 쇼크는 ㅎㅎ

이 양아들은 어렸을때부터 친부모와도 좋은 관계를 맺으면서 지낸다고 한다

그럼 이 양아들은 부모가 둘인 셈

매일 연속극만 보면 네가 내 핏줄이야 라며

울고불고 짜는 게 일상인 한국에서는

이런 자연스럽고 태연함이 조금 충격으로 다가올수밖에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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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아들은

다큐감독이 종종 인터뷰하는데 느껴지는게..

뭐랄까 – 부자관계 대화라기 보다는

베스트 프렌드의 느낌?!

다큐감독이 와이프의 말에 의하면

피터팬 컴플렉스를 극복하지 못한

애어른이라고는 해도 ㅎㅎ

암튼 –

그런 것도 좀 부러웠다.

효도라는 거창한 것은 치워버리고

깊은 우정 같은 것으로 부자-부녀 관계를 채워넣는 것이…

암튼

오랜만에 본 다큐였는데

예상외로 얻은게 꽤 많았다

얻은거라고 하니깐 – 좀 경제적인 개념 같은데 –

여러모로 많이 생각하게 해주고

배우게 해준 것 같다

보는 내내 가슴 찡하게도 해주고

다큐라는게 갖고 있는

강한 힘이란

이런 거구나 했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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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미 부분에 딸의 대학교 기숙사에서 작별인사하는 다큐감독

카메라맨인덕에 몇번 등장하지 않기에 등장해서 – 더욱 반가웠던 –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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