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리더-스티븐 달드리] 딜레마

전체적으로 영화가 매우 깔끔한 느낌입니다. 그렇다고 다 덜어내고 남은 핵심만 모아 둔 것 같은 느낌은 아닙니다. 쉽게 빠질 수 있는 ‘감정의 도취’ 로 나가아지 않고 꽤 영리하게 영화의 줄기를 타고 흘러갑니다. 뭐 그런 것 있잖아요. 멜로의 상실에 있어서 둘이 다시 화합하는 부분에 있어서 과도한 행복의 씨앗들을 뿌려버리거나 홀로코스트 같은 시대적 아픔을 이야기하는 부분에 있어서 그 끔찍함에 대해서 어머 세상에 어쩜 저럴 수 있어 라는 식으로 관객의 동정을 바라는 묘사 같은 것이요. 물론 이것이 단순한 멜로도 아니고 홀로코스트가 메인 테마만은 아니기 때문이죠. 이 영화가 이렇게 절제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원작이 훌륭했고, 원작에서 던지는 주제의식을 철저하게 구현하고자 했던 것 같아요. 그 외의 부분은 아주 깔쌈하게 가지를 치는 것이죠.   원작의 주안점이라고 생각이 드는데요. 이건 독일인의 어떤 딜레마 같은 것입니다. 나치는 개인이기도 했지만 그것은 한 국가이기도 했어요. 그리고 그 국가는 독일인이 원했던 것이기도 했어요. 나치는 분명 선거를 통해 당선된 사람입니다. 어디 외부에서 총칼로 위협해서 세운 사람이 아니네요. 그 나치시절이 끝나고 난 후, 그 잔혹한 시절 유태인 학살의 주범을 어디까지 물을 수 있을까요. 그 경계는 어디까지 일까요.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들어가보면… 거기서 일했던 군인들은? 그런데 그 군인들 중 일부는 단순 문지기만 했다고 하면요? 그런데 그 수용소에서 단순히 밥만 지었던 군인이라고 하면요? 그런데 완전 쫄병이어서 어디 거부도 못하고 눈물을 머금으면서 독가스 발포 스위치를 눌러야만 했던 군인이라면요. 수용소 밖으로 나가서 그 독가스를 운송했던 운전수는요? 수용소로 유태인들을 이동시켰던 관리인은요?   여기서 한나는 그 관리인 중 한명이에요. 그녀는 직업과 업무에 충실할 뿐이에요. 마치 기계 부속품 같은 사람이었죠. 그런데 거기다가 일에 너무 충실한 나머지 화재가 나도 문 조차 안 열어줬다고 합니다. 끔찍한 사람이군요. 이건 분명 나치의 안 쪽으로 집어넣어야 합니다, 라고 할 법하죠. 법정의 사람들은 그 끔직한 ‘괴물’ 을 용서치 않으려 해요.   법정의 사람들이요? 그건 누구죠? 독일인들이에요,.   사실 그 경계지움 자체가 딜레마에요. 그 경계의 안쪽과 바깥을 설정하기도 힘들 뿐더러, 나치라는 괴물들을 만들어 내는 순간 그 바깥은 자동적으로 면죄부를 받게 되는 것이잖아요. “그들이 정말 악독한 괴물이다.”는 나 자신은 그렇지 않았다의 다른 표현일 것입니다. 그 괴물들만 없애면 그만인가요? 그러면 대다수의 독일인들은 면죄부를 받을테니깐요. 그렇게 할 수 있나요? 또 반대로 그런 식으로 면죄부를 받지 아니하고 나 자신도 죄인이라고 친다면… 나치, 그들을 받아들일 수 있나요? 그 비인간적인 학살들을 자신의 죄로 받아들일 수 있나요? 이게 바로 독일인의 딜레마인 것 같습니다.   한느는 사실 그 딜레마 속에서는 조금 빗겨간 인물같습니다. 그녀는 문자를 모릅니다. 그녀에게 문자 그 자체는 두려움의 대상이에요. 그녀는 마치 동물처럼 생존하는 인간이에요. 그냥 밥을 사먹을 수 있을만큼만 먹고 살아가는… 시민사회의 시민이기 보다는 조금 극단적으로 말하면 동물-인간에 가깝죠. 문자만 없을 뿐이 아니라 가족도 친구도 그녀에겐 아무도 없는 것 같습니다. 어찌 말하면 독일이라는 사회안에 몸만 위치하여 있을 뿐, 사회라는 경계 바깥에 둥둥 떠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녀가 문자를 터득하지 못했던 것도 그녀 주위에 문자를 알려주는 사람이 없어서 그랬겠지요. 그녀에게 문자와 사회라는 경계안의 세계는 막연한 두려움의 대상, 그녀의 삶이 개입될 수 없는 곳 처럼 느껴질 테지요. 그런데 그런 그녀의 빗겨감이 오히려 그녀를 나치의 범주 안에 흘러가게끔 하고 또 그것으로 인하여 법정에서 그녀가 거의 주동자인것처럼 매도(?)되고 맙니다. 결국 그녀는 거의 종신형을 사는데요, 사실 참회하는 모습이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그냥 누군가 정말 힘들었나보다, 하면 아- 그런가보다 이 정도인데요. 이것은, 그녀가 파렴치한 또는 사이코패스이기 때문이기 보다는 시민사회의 책임을 질 그런 자격을 갖추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에요. 그녀에게 사회 안에서의 선이든, 악이든 간에 그것은 그녀가 위치하지 못했던 사회라는 범위 안에서의 일이에요. 감히 진입할 수 없는 곳의 이야기는 그녀에게 충분한 판단능력과 정서적 공감을 일으키지 못하는 것 같아요. 그녀는 여전히 동물-인간이에요.   여기에 대비되는 인물이 주인공 남자입니다. 그는 문자의 체계안에 놓여있을 뿐더러 법조인이기까지 합니다. 문자를 읽고, 생산하고 거기에다가 문자의 의거해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역할까지 지니고 있네요. 그는 법정에 선 한나를 봅니다. 한나라는 개인이 고통당하고 있다는 것에는 괴로워하지만 다른 한편 그녀를 용서해선 안된다는 심리적 기제가 발동하는 것 같습니다. 왜냐구요, 그녀를 받아들이지 않아야만, 그녀가 정말 악독한 인물까지는 아니더라도 용서할 수 없는 죄인이라고 이야기해야만 그 자신도 나치시대에서 일종의 면죄부를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는 문자세계 속의 그리고 독일사회 속의 한 사람이자, 시민… 법조인이기 까지 하잖아요.   흥미로운 점은 남자와 한나와의 접속코드가 되는 책 읽기 태잎이 기제가 되어서 한나 스스로 문자세계로 진입하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문자세계로의 진입은 한나 스스로에게는 양날의 칼입니다. 그것은 문자세계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그녀 자신의 트라우마 혹은 콤플렉스를 넘어서는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문자세게-독일사회에서 그녀가 행했던 죄들을 그녀가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몇십년만에 만난, 주인공 남자가 한나를 보고 그 의무를 상기시키기 까지 하죠.   그리고 결국, 한나는 자살을 선택합니다. 그것은 문자세계 진입에의 굴복의 의미는 아니에요. 오히려 문자세계로 기어코 기어들어가서, 혹은 이미 기어들어가 버렸기 때문에 ‘그녀 자신의 의무- 참회’ 를 그녀 스스로 비극적으로 짊어지고 해결한 것이에요. 주인공 남자가 원했던 참회를 다소 극한 방법으로 해결해버렸군요, 그리고 그녀 개인적으로는 더 이상 동물로서 인간으로 살아갈 수 없다는 데에 대한, 그래서 ‘문자세계 진입에의 굴복’과는 늬앙스가 조금 다른 문자세계에 진입해놓고 그녀의 삶이 문자세계를 거부해버린 것이라 할 수 있을 것 같군요. 물론 그 선택이 능동적이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요.   그녀는 참회의 유언장을 남깁니다. 주인공 남자가 이것을 야기하였긴 했지만 남자는 이 참회를 받을 자격이 없어요. 용서를 해줄 자격도 없지요. 그 자격은 희생당한 유태인에게 있을테지요. 그래서 남자는 유태인에게 갑니다. 그리고 유태인에게 한나의 특수성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하는데 그것으로는 전혀 먹혀들어가지가 않는군요. 유태인은 한나든 누구든 독일인 개개인에게서 폭력을 당한 게 아니잖아요. 유태인은 독일과 독일인 전체가 모두 폭력의 덩어리인 것이에요. 그 속에서 한나라는 특수성만 쏘옥 빼서, 그 개인의 사정이 이렇고 저랬으니까 그랬다, 하는 것이 이해될 수 있을 지 만무한것이지요. 하지만 그 유태인도 압니다. 그녀에게 다가온 폭력은 빈틈없는 괴물 덩어리, 악의 덩어리이지만 그 안에 인간이 있다는 것을요. 그녀 자신이 적극적으로 용서하고 이해할 수는 없지만요. 그녀 자신이 어쩌면 친구가 될 수도 있는 그런 인간, 이요. 그래서 그녀는 한나가 돈을 모아뒀던 자그마한 통은 받아두는 것이죠.    나치시대를 살았던 독일인들은 한나의 참회에 용서를 내릴 자격이 없습니다. 유태인은 용서를 거부했구요. 그렇다고 상관없는 외부인이 그래야 할까요. 남자는 자신의 딸에게 한나의 이야기를 꺼냅니다. 그녀의 딸에게 한나는 용서받을 수 있을까요? 여기서 남자의 딸이 아이러니 한 것은 상처받은 주인공 남자로 인해 양태된 또 하나의 희생양이었다는 것입니다. 남자는 한나의 환영에 휩싸여 그리고 한나라는 자신이 용서하고, 받아들일 수 없는 한 독일인 때문에 그 자신의 가슴속에 있는 사랑과 나눔이라는 것을 걷어치워버리죠. 그 희생양이 아마 그의 아내와 그의 딸이 됐을 거에요. 그래서 떠돌게 된 그 남자의 딸. 그 남자의 딸이 한나를 용서해줄까요?     제 생각은… 아마도 용서를 받을 수 있을 것 같네요.     PS : 케이트 윈슬렛은 정말 훌륭한 배우인 것 같습니다!

코멘트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