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대선일

그는 오늘 운동을 하기로 정했다. 내일이 쉬는 날. 쉬는 날을 앞둔 날은 금요일밤 특유의 분위기 같은 것에 휩쓸리곤 했다. 쉬는날 별 다른 일정이라곤 없지만, 오늘 밤 뭔가 무리한 것을 해도 그것을 수용할 수 있는 날이 바로 앞에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낮 시간은 다소 산만했다. 역시 계획을 짜거나, 계획한 것을 수행하거나 그러지 않았다. 아, 맞다 이걸 해야지, 아, 맞다 해야되긴 하는데- 지금으로선 미루고 싶은 마음이 드니깐 미뤄야지. 이런 식의 반복행동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래도 조금 나았던 면은 끄트머리만 조금 남겨뒀던 책을 마저 다 읽어냈다는 것이었다. 그는 왓챠피디아에 올해 읽었던 책이 몇권까지 기록되었는지 확인하고는 조금 안심했다. 이제부터 한권의 책을 읽지 않아도 적어도 1달에 1권 이상의 책을 읽었다고 이야기 할 수 있게 됐다. 저녁 즈음이 되고서나서 색보정 된 영상을 받을 수 있었다. 사무용 모니터를 기준으로 보니, 색보정실에서 보던 것보다 좀 어두워보였다. 색보정 기사가 영상이 어두우면 사람들이 딴 생각을 하거나, 자기 시작하죠, 라고 이야기 했던 것이 떠올랐다. 극장의 노후된 빔프로젝터가 어두울까, 이 사무용 모니터가 어두울까. 그런 생각이 다소 스쳤지만, 일단락으로 치기로 했다. 이제 진짜 끝나가긴 하겠구나. 이제 더이상 이 영화로 해야 할 일이 없겠구나. 바랐던 바지만, 다소 붕 뜬 기분이 들기도 한다. 이 영화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막연하고 점점 자신이 없어져 몇차례 한숨을 내쉬었다.

저녁시간이 되자 가기로 했던 바이지만, 또 한번 진짜 꼭 가야만 할까? 라는 악마의 속삭임이 맴돌았다. 하지만 달리 핑계댈 게 없었다. 집에 있는 사무용 의자가 뭔가 맞지 않는지, 허리에 통증을 유발하기 시작했다. 자전거를 탈 때도 느낄 수 있는 은근하게 지끈거리는 느낌. 분명 질환까지 다가가지 않았지만 안좋아졌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어떤 감각. 허리도 그렇지만 꺾을때마다 뚜둑 소리를 내는 목도 문제이고, 뭐가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저 뻐근함을 유발하는 어깨도 문제인데… 그런데 운동이라도 안할 수는 없었다. 그래 뭐라도 해야지, 뭐라도 그는 지하 1층으로 내려갔다. 평상시보다 조금 늦은 시각에 갔는데 사람들이 좀 있었다. 탈의실에는 나체로 주섬주섬 뭔가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남자들 특징인지 모르겠지만 왜 꼭 탈의실에서 나체로 뭔가를 계속 할까. 물기를 닦고나서 서둘리 옷을 주워입지 않고, 꼭 그 상태 그대로 드라이질이든 뭔가를 하려한단 말이지. 저 상태를 유지하게끔 하는 추동력은 무엇일까, 그는 잠시 생각하고, 서둘리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섰다.

운동을 하면서 영어 관련 팟캐스트를 틀어두긴 했지만, 주의깊게 듣진 않았다. 뭔가 침묵 속에 있지 않았다, 라는 자기 위안의 백색소음에 불과했다. 다른 이들보다 짧은 운동시간을 마치고는 저녁을 먹고 자전거를 탔다. 역시 을지로4가. 을지로4가에 자전거 반납대에 다른 자전거는 없었다. 여긴 완전히 도심의 공간이구나. 그나마 이 부근 호텔에서 자는 외국인들이 자전거를 잘 빌리진 않으니깐. 어제인가. 바로 이곳에서 어떤 외국인이 그에게 길을 물어본 적이 있었다. 길은 매우 쉬웠는데 역시 그는 단어 위주의 짧은 영어를 뱉어냈다. 스트레이트. 유어 라이트. 호텔. 뭐 이런 식. 과연 그 외국인은 네이트브 영어권 사람으로, 아- 역시 한국인들은 영어를 잘 못하는구나. 라고 생각하고 몸을 돌렸을까. 아니면 그나마 관대한 유러피언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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